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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사망 교사 일기장엔 "업무폭탄, 연필 사건"…갑질 단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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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5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교내에서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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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배경을 수사 중인 경찰의 ‘학부모 갑질 의혹’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8일 자신이 담임 교사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A(23)씨의 사망 배경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타살 흔적은 없다”고 이미 1차 결론을 내렸으나 갑질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서는 갑질 의혹을 제보한 노동조합 관계자와 A씨와 함께 근무한 같은 초등학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또 유족으로부터 고인의 휴대전화와 아이패드를 제출받아 지난 24일 서울경찰청에 디지털포렌식을 의뢰하는 한편 지난 주에는 이른바 ‘연필 사건’(A씨 반의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찌른 사건) 관련된 양측 학부모를 불러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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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 A씨의 일기장 내용 일부. 사진 서울교사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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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A씨에 대한 특정 학부모의 갑질이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24일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유족의 동의를 받아 공개한 일기장에 따르면 A씨는 생을 마감하기 2주 전인 7월 3일 일기장에 “업무 폭탄과 00(연필 사건 관련 학생 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며 업무 스트레스와 ‘연필 사건’을 짧게 언급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갑질의 단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필 사건’ 이후 학부모의 항의 전화가 수십 통 있었다는 의혹에 관해 확인 중”이라면서 “진술을 포함해 통화기록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아직 ‘갑질’여부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정확한 사실관계는 수사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근거 없는 소문이 사건의 진상보다 먼저 유포되면서 혼돈이 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이초 사건을 교권 침해로 받아들인 일선 교사들의 울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용서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개인 일탈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개인사 문제만 있다면 왜 고인의 마지막 공간이 학교여야 했겠는가”라고 비판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A씨의 죽음을 계기로 교직 사회에서는 “학부모 민원으로 교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증언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5일 교사노조연맹 관계자는 “사망 장소가 학교라는 점에 의문을 갖고 제보를 수집한 결과 갑질 정황이 발견됐고, 수사 기관에도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수사 상황에 밝은 한 경찰 간부는 “딱 떨어지게 갑질을 했다고 할만한 정황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만큼 수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난감하다’는 게 딱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초경찰서 측은 “통화 포렌식 및 참고인 조사를 모두 마친 후 종합적으로 판단할 예정”이라며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2019년 3월부터 시행 중인 변사 사건 처리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변사 사건에 대해 범죄 관련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때까지 사안 및 사망 경위를 수사해야 하고 범죄 관련성은 부검 감정 결과 및 주변 구성원 조사, 전문가 의견 등 모든 수사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서초경찰서 측은 “필요한 경우 누구라도 참고인 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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