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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비례대표 40%, 지난해 '지역구 확보용' 정치자금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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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은 임기 반환점 돌기도 전에 활동 개시
법적 문제없지만, '도입 취지 퇴색' 지적도

지난해 국회 비례대표 의원 10명 중 4명꼴로 차기 총선에서 출마를 희망하는 지역 활동에 정치자금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구 없는 비례 의원들이 서둘러 지역 기반을 닦아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자금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니지만,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직역을 대표하거나 소외계층 의견을 의정에 반영하려는 비례대표제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청구로 제출받은 2022년도 국회의원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회 비례 의원 47명 가운데 19명(40.4%)이 지난해 지역 정치 행보에 정치자금을 사용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인 10명(52.6%)은 21대 국회 임기 반환점(2022년 5월 30일) 이전부터 지역 활동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 관련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지출한 비례 의원은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내년 총선에서 광주 서을 출마를 준비 중인 김 의원은 지난해 지역사무소 임차료·인테리어·유지비와 지역 의정활동 교통비 등으로 총 1억3,723만 원을 사용했다. 김 의원이 지난해 지출한 정치자금(2억1,347만 원)의 64.3%에 이르는 액수다. 경기 안성 출마를 준비 중인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역활동에 4,287만 원(지난해 지출 중 43.9%)을 지출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서울 강동갑을 노리는 전주혜 의원이 4,246만 원(지난해 지출 중 33.6%), 전북 전주을에 재도전하는 정운천 의원이 3,498만 원(지난해 지출 중 31.8%)을 각각 지역활동에 사용했다.
한국일보

21대 비례대표 의원의 출마 준비 지역구.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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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내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항목은 지역사무소 운영비였다. 지역사무소는 정치인이 지역구 유권자와 소통하고 민원 등을 수렴하는 지역활동의 '핵심 거점'이다. 지난해 지역사무소를 열며 출마 의사를 분명히 한 의원은 17명인데, 이들이 지역 관련 활동에 지출한 액수의 81.96%가 사무소 비용이었다. 사무소와 관련 없는 지출 항목으로 △기초의원 등 지역정치인 후원금 △지역 숙소 임차료 △지역 간담회 진행비 등이 있었다.

비례 의원들의 지역 활동 관련 지출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 선관위는 2010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로부터 '현재 비례대표 의원으로 의정활동 중인데 향후 출마 준비를 위해 지역사무실 운영 등에 정치자금을 지출하는 게 가능하느냐'는 문의에 "국회의원이 직무수행을 위해 두는 사무소 임대료 등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하는 건 무방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에 "현재까지도 유효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례 의원들이 재선을 위한 지역구 확보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지역기반이 없어도 국회에서 다양한 계층·직능·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라는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3일 "지역구 선거 승리가 어려워도 약자 등 정당의 핵심가치를 대변하거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인사들의 국회 입성을 가능케 하는 게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라며 "비례대표 의원들이 재선 등 공천에 집중하며 지역구 의원과 차별화하지 못한다면 국회의 다양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김종훈 인턴기자 usuallys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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