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중간)가 지난 6월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 팀 쿡 애플 CEO(왼쪽) 등과 회동했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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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부터 아시아 증시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 3년간 일본, 한국, 대만 등 주요 아시아 국가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굳건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중국 투자 금액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블룸버그·윈드(WIND)·삼성증권 등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4억달러 이상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분기만 해도 중국 증시에는 273억달러가 유입됐지만 이 같은 흐름이 반전된 것이다. 빠져나간 자금은 인도·멕시코·대만 등 신흥국으로 다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3분기 들어 이런 추세가 다소 잦아들었다고는 하나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당분간 이어질 고비를 넘기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신흥국들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디리스킹은 ‘위험 제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분리를 뜻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대신해 위험 요소만 없애자는 서방의 새로운 대중국 전략을 뜻한다. 지난 3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방중했던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자주 쓰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자금이 중국으로부터 유출된 가장 큰 이유는
본격화된 디리스킹 논의와 내수 침체 때문이다.
본격화된 디리스킹 논의와 내수 침체 때문이다.
당장 미국 기업들부터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국 주재 미국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중국 내 미국 기업 25%가 ‘기업을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하거나 실제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 외 27%의 기업들은 ‘(중국 외) 다른 국가에 대한 투자’를 경영 우선순위에서 높여 잡았다고 답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 비율이 21%였던 것과 비교해 높아진 수치다.
지정학적 이슈가 있을지라도 중국 내수 시장이 과거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면 시장으로서의 매력도라도 있을 터.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기록적인 청년실업률과 소득 침체, 부동산 경기 부진 등은 중국 경기와 함께 소비여력도 낙관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글로벌 투자은행(IB) 분석 보고서를 인용해 “외국 투자자들은 청년실업 증가, 소득증가율 부진 등을 감안할 때 중국 소비 회복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연초 경제 재개방 이후 급증했던 외국인 자금 유입이 4월 들어 순유출로 전환되고 중국 증시에 대한 투자심리도 취약해졌다”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 늘어나는 인도
발 빠르게 투자자들이 중국 대신 찾은 투자처는 인도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에 힘입어 NIFTY 50지수 기준 연초 이후 8월 10일까지 7.6% 상승했다. 7월 20일 인도 주식 시장 대표지수인 SENSEX와 NIFTY 50지수는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2분기 들어 8월 15일까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이 기간 NIFTY 50지수의 상승률은 12%로 같은 기간 상하이 종합지수의 주가 수익률 –3%를 크게 웃돈다.백찬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는 인도의 글로벌 대비 긍정적인 경기 전망, 미·중 갈등의 중장기 수혜 기대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라며 “올해 2분기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인도 주식 150억달러를 순매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인도 기업들의 실적 전망도 낙관적이다. 백 연구원은 8월 중순 “NIFTY 50지수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는 3개월 전 대비 4% 상향 조정됐다”며 “양호한 매크로 환경, 실적 개선 기대감은 인도 주식 시장의 상승세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인도 증시가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탄탄한 경제 성장세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23년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6.3%로 중국(5.6%) 등을 제치고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전망된다.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애플 등 미국의 핵심 기업들도 인도로 속속 모이려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50년 후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최근 전망하는 등 장기 성장 기대도 높은 편이다.
완성차 투자 이어지는 멕시코
국내 투자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멕시코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찌감치 ‘디리스킹 수혜’ 투자처로 점찍은 시장이다.멕시코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아이셰어스 MSCI멕시코(EWW)는 올해 들어 8월 15일까지 주가수익률이 24.2%에 달했고 프랭클린 FTSE 멕시코(FLMX) 역시 유사한 수익률을 보였다. 이 ETF들은 중남미 최대 이동통신사인 아메리카모빌, 금융서비스 업체인 그루포피난시에로바노르테, 음료 업체인 포멘토에코모미코멕시카노, 월마트의 멕시코법인 월마트데멕시코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멕시코MSCI(합성) ETF가 유일한 상품이다. 해당 ETF는 8월 16일 기준 최근 6개월 새 11%의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멕시코 관련 ETF 상승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멕시코는 최근 북미 위주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니어쇼어링’ 수혜주로재조명받고 있다”며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총 3859억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15.3% 증가했으며, 역사적으로 멕시코 FDI의 50%를 차지하는 미국의 멕시코 투자는 지난해 15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탈세계화 기조 속 니어쇼어링이 가속화된다면 멕시코로 향하는 FDI 규모 역시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멕시코의 경우 특히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 거점으로서 진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발표된 후 BMW, 포드, GM 등 글로벌 업체들은 멕시코 진출 결정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테슬라도 50억달러를 투자해 기가팩토리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멕시코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차세대 모델의 조립 비용을 현재 모델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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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반도체 생태계’ 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남아 있는 대만도 2분기에는 ‘탈중국 머니’를 끌어들였다는 분석이다. 이 시기 대만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32억달러로 한국 증시에 쏠린 금액 24억달러에 비해 컸다. 경제규모는 한국이 더 크지만, 외국인 투자자금은 대만으로 더 많이 몰린 셈이다.대표적인 대만 관련 ETF로는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즈 MSCI대만 ETF(EWT)’가 있다. 편입 종목을 살펴보면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의 편입 비중이 22%로가장 높으며 대만달러를 5% 비중으로 편입하고 있다. 애플을 고객사로 둔 팍스콘 비중도 4%로 높다. EWT의 올해 들어 8월 16일까지 연중 수익률은 12%로, S&P 500지수(16%) 및 코스피지수(13%)와 유사하거나 소폭 낮다.
대만 증시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산업군은 단연코 반도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 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79.7%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후공정(패키징·테스트) 산업에서도 57.6%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으며 팹리스 부문도 점유율 22%로 2위다.
대만 반도체 산업은 한국에 비해 중소·중견기업의 비중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대기업에 편중되지 않고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의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 투자액은 한국에 비해 적지만 대만 내 글로벌 1000대 기업 수가 한국보다 4배가량(대만 78개, 한국 18개) 많다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김도현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책임연구원은 “국가별 매출액 7대 기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무려 83.4%인 반면 대만은 49.1%에 불과하다”며 “한국 1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제외한다면 오히려 대만에 역전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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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만에는 파운드리, 후공정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파운드리 기업 중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TSMC와, UMC가 대표적이다.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6%이며 UMC는 6.9%를 차지하고 있다. TSMC는 초미세 공정에서 세계적인 역량을 보유한 반면 UMC는 14㎚ 이상 ‘레거시’ 공정 비중이 높다. 전략적으로 초미세 공정이 적용되지 않아도 되는 차세대 통신기술이나 OLED 같은 기타 용도의 반도체 수요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미디어텍은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1위, 팹리스 시장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2021년 3분기 기준 글로벌 팹리스 점유율은 퀄컴(23%), 엔비디아(19%), 브로드컴(16%)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3분기 기준 AP 시장 점유율은 35%로 퀄컴(31%)보다 소폭 높다. 리얼텍 역시 글로벌 팹리스 시장 점유율 8위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장 사운드 및 유무선 네트워크 칩셋 설계에 특화된 기업으로 특히 사운드 칩셋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신흥국 투자는 성장성만큼이나 변동성도 커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될 경우 자본 유출이 우려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질 때 리스크가 큰 신흥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조언이다. 각 국가의 정치,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환율이나 기준금리 등 거시경제 요인들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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