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빙하기와 세계적인 가뭄 장기화 등이 겹친 90만~80만년 전 홍적세(Pleistocene) 초중기에 인류가 전 세계의 번식가능 인구가 1천300명 미만으로 감소하는 멸종 위기를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류 조상의 인구 규모 역사에 대한 개략도 빙하기가 최고조에 달한 홍적세 초중기 약 90만년 전부터 세계 인구가 급감, 번식 가능 인구가 1천280명 이하로 감소했고, 이런 인구 병목 현상이 11만7천년간 계속돼 인류가 멸종 위기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 Hu et al./ Science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 판이쉬안 교수팀은 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인간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해 과거 특정 시점의 인구 규모를 추정하는 기법을 통해 90여만년 전 세계 인구가 급격히 줄어 번식 가능 인구가 1천300명 미만으로 감소하는 인구 병목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90만년 전은 빙하기와 관련해 지구 기후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인류 화석 및 고고학 기록이 상대적으로 드물고 고대 DNA 복원이 어려워 기후 변화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내기 어려운 시기로 꼽힌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유전자 계통 간의 차이를 살펴보고 과거 인구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융합 모델(FitCoal : fast infinitesimal time coalescent process)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해 아프리카 지역 10개 집단과 비아프리카 지역 40개 집단 총 3천154명의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 인류의 조상은 약 93만년 전에서 81만3천년 전 사이에 전 세계 번식 가능 인구가 1천280명에 불과한 심각한 인구 병목 현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구 병목 현상의 흔적은 아프리카 10개 집단 모두에서 직접 발견됐고 비아프리카 지역 40개 집단에서는 병목 현상 존재에 대한 약한 신호들이 감지됐다.

연구팀은 병목 현상 시기는 빙하기의 장기화, 해수면 온도 저하, 아프리카·유라시아의 장기적인 가뭄 등 홍적세 기후변화와 일치하고 아프리카·유라시아의 인류 화석 기록상 해당 시기에 상당한 틈이 있는 것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공동조상에서 진화한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호모 사피엔스 [The Nobel Committee for Physiology or Medicine. Illustrator: Mattias Karlé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팀은 이런 인구 감소는 당시 세계 인구의 98.7%가 사라진 것으로 병목 현상이 11만7천년 간 지속되면서 인류 조상은 멸종 위기에 겪었다며 이 결과는 인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함께 이 시기에 종 분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박물관 닉 애슈턴 박사와 런던 자연사박물관 크리스 스트링어 박사는 논평(perspective)에서 "연구팀이 제안한 병목 현상은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의 공통 조상이 산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일치하지만 이 이론은 인류의 고고학 및 화석 증거와 비교해 검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류가 90만~80만년 전 아프리카 안팎에 퍼져 있었다면 연구팀이 제안한 병목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 영향이 더 널리 퍼져 있던 비(非)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 제한적으로 미쳤거나 영향이 단기간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scite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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