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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슈 6G 주도권 전쟁

[5G 시장실패]⑤ 5G 투자 안하니 6G 경쟁서도 절름발이… 반쪽 서비스에 ‘IT 강국’ 위상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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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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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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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민수(29)씨는 출근길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환승할 때면 와이파이를 꺼둔다. 성수지선을 이용하는 정씨는 성수역까지 가는 동안은 빠른 속도의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지만, 성수역에서 잠실로 가는 내선순환선에선 와이파이가 자주 끊기고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는 통신 3사가 5G(5세대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사용하는 와이파이를 신설동에서 성수역으로 가는 성수지선에만 일부 설치했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지난해 말 서울지하철에 5G 28㎓ 주파수를 적용할 계획이었지만, 작업의 어려움 등을 미뤄 연기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주도로 2019년 4월 따낸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이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미국 컨설팅 회사 키어니가 지난 6월 33개 국가의 ‘5G 준비 지수’를 평가한 결과, 한국은 호주와 함께 공동 6위에 그쳤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5G 상용화에 나섰지만 4년 만에 미국(1위), 싱가포르(2위), 핀란드(3위), 일본·노르웨이(공동 4위)보다 5G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키어니는 한국의 5G 경쟁력이 추락한 원인으로 통신 3사의 28㎓ 주파수 포기, LTE(4세대 이동통신) 망을 활용하는 5G 비단독모드(NSA) 고집을 꼽았다. 데이터와 인증·제어신호 처리 등을 모두 5G 망에서 단독 처리하는 ‘진짜 5G’ 단독모드(SA·Standalone) 대신 당장의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반쪽짜리 5G’를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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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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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게을리한 통신 3사… 한국의 5G 리더십 위험해져”

영국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은 지난 13일 발간한 ‘글로벌 5G 벤치마크: 한국의 밀리미터웨이브(㎜Wave) 후퇴는 5G 리더십을 위협한다’라는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가 한국보다 먼저 28㎓ 5G를 구축하면서 한국의 5G 리더십이 위험에 처했다”라고 지적했다. 밀리미터웨이브는 24㎓ 이상 초고주파로 국내에서는 6㎓ 이하 ‘서브 6′ 대역과 24㎓ 이상 초고주파 대역의 5G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다. ‘LTE 대비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초고주파에 해당하는 28㎓ 사용이 필수다. 그러나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다. 28㎓는 장애물을 피해가는 회절성이 약해 더 많은 기지국을 촘촘하게 깔아야 하는데, 투자 비용 대비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안 포그 오픈시그널 부사장은 보고서에서 “초고주파를 사용하면 평균 다운로드 속도가 1.6~3.6배, 업로드 속도는 1.7~2.4배 향상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통신 3사가 초고주파 5G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신 3사는 통신 세대가 진화할 때마다 SA 방식을 적용했다. SA 방식은 쉽게 말해 10차선 도로를 새롭게 만들 경우 기존에 사용하는 5차선 도로는 그대로 놔둔 채 완전히 새로운 10차선 도로를 설계해 만드는 것이다. 통신 3사는 LTE까지 세대가 진화할 때마다 SA 방식을 적용했지만, LTE에서 5G로 넘어갈 때는 기존 망을 활용하는 NSA 방식을 도입했다. SA 방식을 도입할 경우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NSA는 LTE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는 한계가 있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와 통신 3사가 5G 전환 시 NSA를 하기로 한 건 당장 초기 투자 비용을 줄인 후 천천히 SA로 전환하겠다는 것인데, KT를 제외하면 여전히 NSA를 고집하고 있다”라며 “현재 5G는 LTE에서 주파수 대역만 조금 넓혀 속도를 개선한 무늬만 5G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 현재 수준 5G로는 자율주행·VR ‘그림의 떡’

LTE 대비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5G만 사용하는 SA 방식과 함께 28㎓ 주파수 대역도 함께 적용해야 한다. 현재 국내 5G 서비스는 3.5㎓ 중대역 주파수에서 LTE 망을 함께 쓰는 NSA 방식이다. 국내 5G 평균 속도가 LTE 대비 고작 5.9배 빠른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 3사는 설비 투자를 줄여가고 있다. 통신 3사의 설비 투자액은 2019년 9조6060억원에서 2020년 8조2730억원, 2021년 8조2010억원으로 연평균 4% 넘게 줄었다. 지난해 8조9529억원으로 전년 대비 9% 늘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신 3사가 반쪽짜리 5G로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설비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모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현재 수준의 5G로는 통신 3사가 5G 특화 서비스로 내세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자율주행, 원격수술 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28㎓ 주파수의 ‘초지연성’이 없으면 자율주행은 불가능하다. 초지연성은 LTE 대비 10분의 1 수준인 1㎳(밀리세컨드·1㎳은 1000분의 1초) 지연속도를 말한다. 5G의 지연속도는 1㎳까지 도달할 수 있다. 1ms는 0.001초로 사람이 느끼기에 ‘동시에 일어난다’고 인식하는 속도다. 가령 자율주행차에 포착되지 않는 보행자가 갑자기 도로에 튀어나올 경우 자율주행차는 즉시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해야 하는데, 지연속도가 느리면 정지 명령이 떨어져도 사고가 난 후에 자율주행차가 멈추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 출시된 스마트폰 가운데 5G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제품이 없다는 점이다. 통신 3사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포기하면서 “국내에 유통되는 스마트폰 가운데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제품이 없다”라고 제조사 핑계를 댔다. 28㎓ 주파수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전용 단말기가 있어야 하는데, 삼성전자와 애플 등이 단말기를 국내에 출시하지 않아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단말기를 만들려면 통신사들이 먼저 요청해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런 요청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이미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공급하고 있기에 통신 3사가 지원하면 언제든지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나온 갤럭시S22 시리즈부터 28㎓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는 안테나를 탑재했다. 애플은 미국에서 출시한 모든 제품에 28㎓ 주파수 안테나를 넣었다.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6000만대 이상 보급됐다.

◇ 5G 패싱에 IT 강국 위상 추락… 6G 경쟁서 절름발이 신세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5G 투자 없이는 향후 6G(6세대 이동통신)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조언한다. 5G와 6G는 속도 차이만 있을 뿐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동시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위성통신을 활용하는 UAM 등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사용하게 될 자율주행, AR 등은 5G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5G를 통해 운용 및 기술 노하우를 쌓지 않으면 6G에서의 성공적 구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실상 조금 빠른 LTE 수준인 5G 3.5㎓만 붙들고 있어서는 국가 통신 산업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국내 5G 서비스는 ‘LTE 대비 20배 빠른’ 속도와 품질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밝혀졌다”라며 “정부는 통신 3사가 국민들과 약속한 5G 품질과 속도를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

통신 3사의 5G 패싱은 ‘IT 강국’의 위상마저 추락시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다른 나라 대비 통신망이 촘촘하게 깔려있어 음영 지역이 적었다. 글로벌 IT 업체들이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UAM 등 미래 기술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로 한국을 택했던 이유다. 하지만 5G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없으면 테스트베드 역할도 다른 나라에 뺏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5G 28㎓ 기지국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은 올해 말까지 3.5㎓와 별개로 28㎓ 기지국 4만5000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일본 역시 2만2000개의 28㎓ 기지국을 올해 말까지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미국과 일본은 당장은 대형 쇼핑몰과 스포츠 경기장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5G 28㎓ 기지국을 설치하고 있지만, 해당 기지국은 향후 안정적인 6G 구현에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 관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관계자는 “6G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6㎓ 이하의 중저대역 주파수, 24㎓ 이상의 밀리미터웨이브(㎜Wave) 대역 주파수, 위성통신이다”라며 “밀리미터웨이브 대역 주파수를 포기하면 한국은 글로벌 6G 경쟁에 절름발이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윤진우 기자(jiin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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