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탄압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 속
몇 차례 개정· 폐지 시도 보수진영에 막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 활동가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국가보안법 7조 합헌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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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남북 분단 상황을 빌미로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국회에서도 몇 차례 법 개정 또는 폐지 시도가 있었으나 보수진영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자유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1948년 제정됐다. 그러나 이 법, 특히 7조가 추상적인 목적을 내세워 형사처벌을 하고 표현·사상·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군산 제일고 교사들이 모임을 만들어 4·19혁명 기념행사를 하고 김지하의 시를 낭송한 것을 이적활동으로 조작한 ‘오송회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고 김근태 의원은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출범식장에서 결의문을 낭독·배포했다가, 신학철 화백은 북한 농부가 평화로운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헌재는 1990년 7조에 위헌성이 있다면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하면 위헌성을 피할 수 있다는 한정합헌 결정을 했다. 이에 국회가 해당 조항을 일부 개정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유엔(UN)은 1992·1999·2006·2015년 등 수차례 보안법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에 폐지를 권고했다. 1998년 대법원이 보안법 7조 위반 사건의 유죄를 확정하자 유엔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지난 14일에도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은 인권이사회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거나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때 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2004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정식으로 권고했다. 같은 해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며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이제 드디어 문명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보안법 폐지를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정해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법개정은 끝내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선 2020년 10월 이규민 전 민주당 의원이 보안법 7조 삭제법안을 냈다. 2021년 5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 같은 해 10월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각각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을 냈다. 의원들은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정권 안보 유지 수단이자 정치적 반대 세력과 의견을 처벌하는 도구로 악용됐다”며 “냉전체제라는 법 탄생의 기반이 이미 해체된 21세기에 국가보안법이라는 냉전적 구시대의 유물은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1991년 국회의 법 개정 이후에도 7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 7조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위헌 의견을 내는 재판관 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헌재는 2017년 이후 청구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을 모아 다시 심리했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합헌이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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