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업무환경 복합적 고려
“유해물질 농도 기준 미달에도
장기간 노출 시 발병에 영향”
서울행정법원 장우석 판사는 지난 8일 김모씨(47)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고교 졸업 후 1995년 5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2011년 2월까지 식각 공정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2011년부터는 신제품 마스크 공급관리 업무를 맡았다.
오퍼레이터로 일하면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야간교대근무도 했다. 김씨는 입사 15년 만인 2010년 5월 만성 신장병, 2016년 11월에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2018년 2월 퇴사한 김씨는 만성 신장병과 유방암에 관해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유방암은 산재 승인을 했지만 만성 신장병은 질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승인을 하지 않았다. 김씨는 ‘만성 신장병도 산재’라며 2021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된 유해물질,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이 만성 신장병을 발병케 했거나 적어도 자연경과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그 발병을 촉진 내지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04년 이후 김씨가 근무한 사업장에서 측정된 유해물질의 농도가 허용 기준 미만이라는 연구 결과에 얽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회성 측정 방식은 실제 작업환경 측정 결과로는 한계가 있고,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장시간 근무할 경우 유해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야간교대근무도 김씨 질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김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지담의 임자운 변호사는 “노동자의 과거 업무환경에 대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때, 법원이 그 업무에 관한 여러 간접사실을 적극적으로 살펴 과거의 노출 정도를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씨의 남편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를 통해 “아내가 현재 주 3회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산재 인정 판결을 받아 좋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할까 걱정이다. 산재 접수하고 4년을 기다린 끝에 승소 판결을 받은 만큼 공단이 항소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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