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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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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도 되는데 기다려달라"…'마약 양성' 나와도 못 잡는 檢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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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마약청정 무너진 인프라]② 마약수사 노하우, 명맥이 끊겼다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범정부적 차원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온다. 마약에 손 못대게 하는 예방과 발을 들이더라도 빠르게 적발해 공급조직까지 잡아내는 단속, 재범 삼범을 막고 마약환자들을 다시 사회로 되돌리는 재활·치료의 3단계 인프라가 사실상 붕괴됐다. 현장에선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금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는 것은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최근 잇따른 마약 범죄로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검찰이 마약과 총기류를 몰래 들여온 밀수사범을 체포했다. 국내에서 마약·총기 동시 밀수를 적발한 건 처음이다.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검찰이 압수한 마약 및 총기류를 공개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4.1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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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원하시면 지금 당장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그런데 경찰이 올 때까지 좀 기다려주세요."(검찰 수사관)

"진짜 가도 돼요?"(마약 투약자)

검찰은 마약투약자를 적발하고도 이렇게밖에 얘기할 수 없다. 소변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당장 잡혀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진짜 가도 되냐"는 투약자의 황당한 질문에 검찰 수사관은 "가도 된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비현실적인 대화같지만 현실이 그렇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마약 단순투약과 소지에 대해선 검찰의 수사권이 사라져 이들을 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집에 못 가게 잘 설득해야죠."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검에서 만난 노성래 수사관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노 수사관은 1996년 마약수사직 공채 1기로 검찰에 들어와 26년간 한 길만 판 베테랑이다. 하지만 법개정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단순 투약·소지 범행에 대해 수사개시를 하지 못한다. 지금도 검찰이 하염없이 경찰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다.

최근 검찰은 마약밀수 제보를 받고 A씨를 특정해 공항에서 체포했지만 마약을 찾을 순 없었다. 다만 소변검사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고 미국에서 마약을 투약했다는 자백까지 받았다. 하지만 단순 투약에 대해 수사권이 없는 검찰은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찰이 현장에 오는 사이 검찰이 A를 체포하고 있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

화물운송 등 다른 경로로 마약을 밀수할 수 있었던 만큼 검찰이 수사권이 있었다면 A를 긴급체포 후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추가수사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집에 갈 수는 있는데 좀만 기다려달라'고 설득하는 것뿐이다.

노 수사관은 "경찰이 손 놓고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집에 간다고 하면 우리도 땀난다"며 "그렇게 집에 간 투약자들은 당연히 경찰이 올 줄 알고 증거들을 인멸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마약범죄는 일반 형사범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바로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마약을 구매하는 것과 판매하는 것 모두 범죄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돈을 떼이거나 폭행, 절도가 있어도 신고하지 못한다. 이처럼 범행이 좀처럼 수면위로 노출되지 않는 만큼 수사기관은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정보수집을 해야 한다. 검찰에서 마약수사만 별도 직렬로 뽑아 전문수사관을 기르는 이유다.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마약범죄 근절 대책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 총장은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중심으로 모든 검찰 구성원이 합심하고 경찰·해경·관세청·식약처·지자체·민간단체와 유기적으로 협력해 이 땅에서 마약을 깨끗하게 쓸어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18대 지방검찰청 마약범죄 전담부장검사, 마약수사과장들이 참석했다. 2023.5.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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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마약수사 노하우를 전수하며 체계화된 검찰이었지만 2021년 1월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500만원 이상 밀수사건'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대폭 축소되면서 수사권 조정 이전보다 수사실적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9월 일명 '검수원복'으로 불리는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권 상당부분이 회복될 때까지 일부 마약수사관들은 일반 형사사건과 반부패사건에 차출됐다. 내부에서도 '이럴거면 마약수사관을 왜 뽑냐', '곧 사라지겠다'는 우려가나왔다.

사건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수사관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쯤 공채로 들어온 신입수사관들의 업무숙련도가 떨어져 마약수사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노 수사관은 "세관에서 마약이 적발되면 수사기관에 넘기는데 이때부터 검찰은 빨리 피의자 인적사항과 전화번호, 가족관계 등을 파악한 후 마약이 안전하게 국내로 들어온 것처럼 우편물을 배달하는 '통제배달'을 실시한다"며 "(일반 우편물처럼) 이틀 만에 배달돼야 하는데 기초작업 문제로 배송이 늦어지면 피의자가 수상하게 생각해 우편물을 수령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마약수사 예산도 턱없이 부족해 사비로 일부 비용을 충당하고 수사관들의 '열정근로'로 빠듯한 수사일정을 맞추는 실정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마약수사 예산은 2018년 47억6000만원에서 올해 48억5700만원으로 5년 동안 약 1억원(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마약수사관 정원도 딱 2명(0.8%) 증원됐다. 반면 같은 기간 마약사범은 1만2613명에서 1만8395명으로 45% 넘게 늘었다.

노 수사관은 "피의자 1명을 잡기 위해 현장에 최소 4~5명의 수사관이 나가는데 며칠에 걸쳐 잠복근무를 하다보면 수사비가 많이 필요하다"며 "수사관 6~7명으로 구성된 한 팀에 배정되는 수사비가 한 달에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보니 개인 출장비를 거둬 수사비로 쓰거나 팀장들이 사비를 털어 회식을 한다"고 전했다.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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