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회의사당의 이스라엘 지지 시위 |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연일 우울한 뉴스만 전해지는 요즘 휴대전화에 반가운 알림이 떴다. 미국에 때아닌 김밥 열풍을 몰고 오며 품절됐던 냉동 김밥이 다시 입고됐다는 알림이었다.
지인에게 이 알리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하며 요즘 사는 것이 얼마나 우울한지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지인은 요즘 같아서는 신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답했다.
신의 뜻이 있다고 해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말 말고는 딱히 보탤 말이 없었다. 인간의 이해 능력을 벗어난 고차방정식, '무질서의 질서'가 굳이 따지자면 신의 영역일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비루한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전쟁의 잔혹함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다. 인도주의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는 요즘이다.
미국에서 반유대주의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몇 가지 코드 가운데 하나다. 인종과 성 문제가 지난한 싸움을 거쳐 간신히 발언권을 획득한 의제라면, 혹은 여전히 발언권을 획득하기 위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의제라면, 반유대주의는 미국 사회 깊숙한 기득권층이 단단히 지켜주는 저변의 코드이기도 하다.
그런 미국에서도 이번 전쟁을 놓고는 마냥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보수 진영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지만,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는 네타냐후 정권 출범 이후 이스라엘의 비민주적 처사와, 하마스에 공격 당한 뒤 팔레스타인 지역을 겨냥한 무차별 보복 폭격과 전면봉쇄 등 비인도적 행태에 대해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이스라엘로 돌렸다가 보수 진영의 십자 포화를 맞고 있는 일부 하버드 학생들의 사례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전쟁의 참상에 선뜻 흑백의 이분법을 들이대기가 쉽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전쟁 중에 체포된 적국의 포로에게도 음식과 구호품을 제공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제네바 협약이다. 심지어 19세기에 논의를 시작해 2차 대전 당시에 현재의 형태로 최종 성안됐다.
당시로부터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을 돌아본다. 굳이 전쟁 포로까지 넘어가지도 않는다.
무고한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가 피 흘리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정교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까.
원칙은 명쾌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선별적 인도주의는 인도주의가 아니다. 인권의 동일한 잣대가 선별적으로 적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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