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 씨가 인천대공원에서 밝게 웃으며 달리고 있다. 16년 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그는 이제 한반도 횡단 308km를 주할 만큼 ‘철녀’로 거듭났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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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성교육 강사 박미애 씨(45)는 살을 빼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마라톤의 ‘마’자도 모를 때였다. 약 석 달 정도를 거의 매일 저녁 집 앞에 있는 공원을 열심히 달렸다. 하루 1시간씩 3km, 5km, 6km 차츰 거리를 늘렸다. 어느 순간 10km도 거뜬히 뛰게 됐다. 처음 출전한 하프마라톤에서 두 시간 초반대로 완주했고 포상금을 받았다.
“그때 달리는 재미를 붙였죠. 달리다 보니 혼자 달리기보다는 함께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동호회를 찾았어요. 집 근처(인천 부천)에 ‘두발로러닝클럽’이 있어 가입해 지금까지 매주 일요일 새벽 인천대공원에서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박 씨는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인천 강화군 창후리선착장에서 출발해 강원 강릉시 경포해변까지 달리는 한반도횡단 308K를 3박 4일에 걸쳐 완주했다. 정식 완주로 인정해주는 제한시간 67시간을 단 3분 남겨 놓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16년 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박 씨가 이젠 100km 넘는 울트라마라톤도 거뜬히 완주하는 ‘철녀’로 거듭난 것이다.
박미애 씨가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열린 2023 한반도 횡단 308km를 완주한 뒤 축하 화환을 걸고 기뻐하고 있다. 박미애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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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제가 울트라마라톤 한다고 하면 ‘무모한 도전’이라고 하죠. 그런데 전 다른 사람들이 하면 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작했죠. 100km, 308km 어떤 거리든 전 한 번도 ‘갈 수 있을까’라고 의심한 적이 없어요. 다 묵묵히 완주했죠. 마라톤을 하면서 도전 정신이 생겼죠. 이젠 어떤 일도 시작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앞섭니다.”
한반도횡단 308km 도전 때도 주위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나섰다. 중간에 짬짬이 잠을 자야 하는데 3일 동안 1시간40분 자고 달렸다. 피곤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에너지가 솟았다. 무엇보다 빨리 완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천천히 즐겁게 이대로 쭉 달리자’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걸었다.
“솔직히 막판에 잘 달리시는 어떤 선배님이 지금 좀 힘을 내야 제한시간에 들어갈 수 있다며 저를 끌어 줬어요. 막판에 다시 시내에서 신호 때문에 걸었지만 그분 때문에 기록을 인정받을 수 있었죠. 마라톤을 하다 보면 혼자 달리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이 달려요. 함께 레이스 하는 사람도 있고, 요소요소에서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 힘을 줘요. 308km 달릴 때 CP에서 챙겨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서 큰 힘을 받았어요.”
박미애 씨가 인천대공원에서 두 팔을 들어올리고 활짝 웃으며 달리고 있다. 16년 전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그는 “마라톤 풀코스는 인생의 단막극 같다”며 100km이상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고, 한반도 횡단 308km까지 거뜬히 완주할 만큼 ‘철녀’로 거듭났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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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기록, 완주 횟수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마라토너는 필수라는 그 흔한 손목시계도 아직 없다. 그냥 몸이 허락하는 대로 자유롭게 달리는 게 좋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많이 뛸 땐 1년에 풀코스만 10회 이상 달렸지만 완주 횟수는 그의 머릿속엔 없다. 그는 “내가 완주했다는 게 중요하지 완주 횟수와 기록이 뭔 대수인가”라고 했다. 참고로 그의 풀코스 최고기록은 올 2023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51분대.
박미애 씨(앞줄 오른쪽)가 올 3월 2023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출발을 앞두고 부천 두발로러닝클럽 회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박미애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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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을 달리다 보니 같은 거리에 같은 곳을 달리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졌어요. 조금 더 먼 거리를 달려보면 어떨까 궁금해졌죠.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데 마라톤 풀코스는 인생치고는 너무 짧은 시간에 끝나는 단막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까지 저의 삶과 인생은 많은 굴곡의 반복이었기에 울트라마라톤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을지 궁금해서 시작하게 되었죠. 사실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처음 도전하던 날 완주 후 어떤 기분일지 많이 상상했어요. 막상 완주하니 저에게는 마라톤 풀코스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100km 완주가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 힘들었던 시간에 비하면 100km는 11시간, 12시간이라는 아주 잠깐의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308km 횡단에 나섰죠. 또 다른 도전을 한 겁니다.”
박 씨는 마라톤을 시작한 뒤 체중을 13kg 감량했다. 그는 “이젠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다. 달리기가 생활화됐기 때문이다. 그는 달리고 싶을 때 달린다. 그래도 주 4회 이상은 달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컨디션이 별로 안 좋으면 달리지 않는다. 몸이 달리고 싶을 때만 달린다. 보통 10km 정도를 달리고, 한 달에 한 번 30km 이상을 달린다”고 했다. 인천대공원을 주로 달리고, 부천종합운동장, 부천 중앙공원, 아라뱃길이 그가 달리는 명소다. 아라뱃길을 찾을 땐 40~50km를 달릴 때다.
박미애 씨가 올 3월 열린 2023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해 결승선 통과를 앞두고 있다. 박미애 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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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과거엔 무언가에 도전하고 시도하기보다는 그냥 현실에 안주하는 성격이었는데 달리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강해졌다”고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뒤 직업도 바꿨다. 회사를 그만두고 성폭력을 예방하는 성교육 전문 강사가 됐다. 초반에는 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다 지금은 성인들을 상대로 성희롱 성폭력을 예방하는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달리기를 즐겨 ‘하니 강사’로 불린다. 박 씨는 강사를 양성하는 한국인재양성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박미애 씨가 인천대공원에서 몸을 풀고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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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대한민국종단(537km, 622km),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사막 마라톤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생각하고 하나하나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마라톤은 살도 빼고, 건강도 지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일석삼조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마라톤 덕분에 제 인생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달리기가 저에서 큰 활력소를 줬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만나면 달리기를 권유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경험해보세요. 삶이 바뀔 것입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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