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허위 미투’ 2차 가해자들 향한 김현진씨의 외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피해자 목소리로 이야기하려 노력

이제 와서 침묵하는 이들 사과해야”

경향신문

박진성 시인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허위 미투 가해자’로 몰렸던 피해자 김현진씨(왼쪽)와 이은의 변호사가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인 박진성씨(45)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7년, 그중 절반에 가까운 4년 동안 이어진 재판. 그 모든 순간 피해자인 1998년생 김현진씨(25)는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난 김씨는 “힘들어도 피해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 목소리로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 늘 재판정에 출석해 ‘발언’했다

지난 8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박씨는 그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로그 등을 통해 김씨의 폭로가 허위라고 주장해왔다. 박씨는 “‘재발방지’의 목적으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뒤 게시한다”며 김씨의 주민등록증을 온라인에 유포하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지웠지만 지워지지 않은” 김씨의 개인정보는 무차별적으로 퍼졌다. 피해자를 향한 도를 넘은 글이 온라인상에 넘쳐났다.

박씨는 문단 내 성범죄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승소한 판결을 앞세워 언론사들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합의금을 받아냈다. 그 소송들에 김씨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김씨는 “피해자의 증언이 반영되지 않은 재판이자, 박씨와 언론사 간 합의로 끝난 흐지부지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씨는 법원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어떤 면에선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은의 변호사는 민사소송 1심부터 재판부에 ‘당사자 심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2021년 4월9일, 김씨는 재판정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가 문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두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했지만 최대한 제가 당한 피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나선다는 것은 다른 한편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나섰을 때 판사의 반응이나 법정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생각에 계속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매번 재판정에 출석해 발언했고 항상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2015년 박진성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라는 말로 증언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마다 언제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 한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공개적으로 말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김씨는 “그건 사실 (성희롱을 당한) 2016년부터 계속 제가 해온 이야기였다”고 했다.

■ “침묵하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

김씨는 피해자였지만 오히려 박씨와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로부터 ‘허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 모두 가해자를 ‘허위 미투 피해자’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박씨에 대해) 발언하고 이를 언론이 그대로 전하면, (기사를 본 이용자들에 의해) 악성댓글이 달리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박씨를 ‘괴물’로 만든 건 가해자에 동조한 이들 모두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법체계부터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장애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온 가부장제 사회의 법체계 안에서는 ‘영점’이 잘못돼 있다”며 “여성의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그 정도’는 괜찮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허위 미투’라며 믿고 싶은 것을 노골화한 결과가 바로 ‘박진성 사례’”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오히려 ‘허위 미투 가해자’로 내몬 백래시는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실제 박씨의 주장에 동조한 이들은 페미니즘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무고 피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미투 이전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문제되지 않았는데, 미투 이후 그 행동이 ‘부당한 폭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에 불안을 느끼고 불만을 갖게 된 이들이 ‘박진성 사례’에 이입한 것이라 본다”며 “엄밀히 보면 ‘자기 합리화’ ‘자기 연민’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씨의 실형 이후 사회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가해 행위에 동조했던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다. 김씨는 “(항소심에서) ‘1년8개월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구속까지 됐는데 사회가 너무 조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간 가해자의 상황은 자살 소동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기사로도 실어줬으면서 제 사건의 진행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서사에는 침묵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김씨는 “침묵하지 말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한테 사과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사회에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그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사건을 담당한 이 변호사뿐만 아니라 연대자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의 또 다른 피해자인 유진목 작가는 직접 나서서 김씨의 초기 소송 비용을 모았고 천희란 작가는 김씨의 재판을 하나도 빠짐없이 방청하며 자리를 지켰다. 모두가 연대자이면서 김씨 사건의 기록자였다. 김씨는 “연대해주는 분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많은 이들이 손잡고 어려운 강을 건넜는데, 그 선두에서 피해자가 포기하지 않아 고마웠다. 연대했던 사람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