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12월이 밀려드는 달 같아. 온갖 신고서, 계산서, 영수증과 씨름해야 하는 달이거든.” 지인은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었다. “행운이나 희소식이 맹렬한 기세로 밀려들면 좋을 텐데 말이지.”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한바탕 웃긴 했지만, 밀려드는 상황에 부닥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월말이 되면 다음달에는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12월의 복판에 미완의 상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손끝을 대기만 해도 연이어 쓰러질 게 분명한 도미노처럼 말이다.
12월을 또다시 미루는 달로 만들기는 싫었다. 시간을 쪼개서 누군가와 혹은 스스로와 약속한 것들을 차근차근히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원고 쓰고 강연하는 틈틈이 그간 전하지 못했던 안부를 전했다. 연말을 맞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과장되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1년에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은 사람이 점점 늘어갈 때마다 때마침 찾아온 ‘한 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것이다. “12월은 크게 모이는 달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 작게 모이는 달이 된 것 같아.” 속한 모임이 많다는, 예의 그 친구의 말이다.
송년(送年)은 묵은 한 해를 보낸다는 뜻이고, 요새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망년(忘年)은 한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이다. 어쩌면 마무리에 필요한 것은 보낼 것은 잘 보내고 잊을 것은 빨리 잊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무리에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올해 내게 마무리는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입시, 취업, 이사, 결혼 등 중요한 분기점은 끝이 있는 것처럼, 마치 달성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여전히 도중에 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화장실 청소처럼, 고쳐도 고쳐도 못마땅한 글처럼.
올해 초부터 쓰기 시작한 시 한 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고쳐보는데, 아무리 문장을 빼고 더해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마감이 있는 글이 아니어서 ‘순간의 최선’이 아닌 ‘최대치의 최선’을 다해 쓰고 싶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친다고 해도 몇년 뒤에 그 마음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끝까지 해보는 것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다.
끝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시작을 반기는 마음으로. 끝과 시작이 만나는 때가 온다면 나는 그 시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헤어지기 전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네게 12월은 어떤 달이야?” 잠시 머뭇거리자 친절하게 이렇게 덧붙인다. “어떤 달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흔히 한 해를 배웅하는 달로 인식되는 12월, 섣달이나 온겨울달이라는 토박이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12월, 나는 반대로 맞이하는 달로 삼았으면 싶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헤어지고 난 뒤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2월까지 뭉그적거리며 일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게 12월은 ‘배웅달’이 아닌 ‘마중달’이야. 새해를 마중하는 달.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할 때처럼 설레는 달.” 그저 말만 했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은 시인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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