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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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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서 고문당한 뒤, 프락치 됐다"…'국가배상' 승소한 박만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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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 박만규 목사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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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였다. 전두환 정부 시절 신학도였던 박만규·이종명 목사는 불온분자로 찍혀 군대 안에서 고문과 세뇌를 받고 사회로 내보내진 뒤 프락치로 활동해야 했다. ‘붉은 학생들을 푸르게 만든다’는 독재 정권의 대공 활동, 일명 녹화(綠化) 공작 사업의 일환이었다. 평생을 거쳐 몸과 마음이 무너졌지만, 배신자라는 죄의식 속에 그 피해를 토로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2021년 5월 녹화사업 피해 조사를 개시한 뒤에야,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고 국가를 상대로 목소리를 냈다. 22일 법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신체·사상·양심의 자유 등 인권을 총체적으로 유린한 사건”이라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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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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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황순현)는 박만규·이종명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는 이들에게 각각 9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재판부는 “국가가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진실규명을 결정했음에도 다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내세워서 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군복무 중 육군 보안사령부로부터 동료 학생을 감시하도록 강요당했다며 지난 5월 이 소송을 제기했다. 진화위는 지난해 11월 1차 발표를 통해, 두 사람을 포함한 187명을 녹화사업의 피해자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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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고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 박만규 목사(오른쪽 두번째)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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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대학 81학번인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학내 진보 써클이던 ‘탈춤반’에서 함께 사회적 의식을 키웠던, 반골 기질의 여느 대학생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학생이었다. 군 복무 중이던 박만규 목사와 ROTC 후보생이었던 이종명 목사는 1983년 9월 비슷한 시기 보안사령부로 끌려갔다. 녹화사업 대상으로 분류된 것이다. 각각 수십일의 가혹 행위를 겪은 뒤 방출되면서 이들이 맡게 된 일은 써클 친구들의 동향을 수시 보고 하는 ‘프락치’였다.

양심의 가책이 컸던 두 사람은 보안사에는 협조를 약속하고, 실제론 친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사전에 알리고 민감하지 않은 정보만을 보고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임무는 2개월 뒤 종료됐다. 이 목사가 같은 해 11월 동기와의 술자리에서 프락치 활동을 푸념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보안사 직원으로 의심하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 목사는 옥살이를 해야 했지만, 프락치 활동을 끝낼 수 있었다. 보안사가 이 목사와 친구 사이인 박 목사의 ‘양심선언’을 우려했기에 박 목사도 덩달아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고. 반독재 운동에 앞장섰다. 그 결과 1989년 3월 보안사가 비상계엄에 대비해 마련한 ‘청명 계획’의 우선 검거 대상자 명단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청명 계획은 노태우 정부의 공안정국에서 보안사가 비상계엄에 대비해 마련한 예비검속 계획이다. 900여명의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전원 검거하려던 게 그 계획의 골자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두 사람은 목회자의 길로 돌아갔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박 목사는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 목사와 나는 오랜 친구 사이임에도, 프락치 사건 얘기를 이번에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서로 맞춰본 적이 없다”며 “너무 아픈 기억이었던 만큼, 지난 40년간 누구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군대에서 ‘원산폭격’ 등 가혹 행위를 당한 뒤로 평생 목디스크를 앓아왔다. 이 목사는 현재까지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고 한다. 이 목사는 이날 재판에도 자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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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파면 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1월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가진 김순호 경찰대 학장 임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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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주변에는 프락치 활동으로 동료들로부터 배척받고, 이번 진화위 조사에 진실 규명 신청조차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 목사는 “‘기업에 취직시켜 주겠다’, ‘장군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군사 당국으로부터 심하게 받았었다”며 “그런 회유 속에 영혼을 팔았던 이들도 적지 않고, 피해 양상도 층층이지만 모두 국가폭력을 겪은 이들이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프락치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이 일었던 김순호 치안정감도 지난 10월 진화위가 밝힌 녹화사업 진상규명 대상자 101명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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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제66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이 의사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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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 목사와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목사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선 환영한다”며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줘서 참으로 다행이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일일이 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게 아니라 국가가 보상이나 치유 등 진화위 권고사항을 이행해 줬으면 좋겠다”며 “현재 소송에 돌입한 인원이 114명이며 최근 진화위에서 (피해자) 결정을 받은 101명과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명도 있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과연 법원에서 인정한 9000만원이 '국가에게 이런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 던질 수 있는 금액인지에 대해 의문 제기하고 당사자들과 논의해 항소 여부 검토하겠다”고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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