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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대법 "명예훼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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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 명예훼손으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해야"

연합뉴스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일본 교토, 서울, 대전 등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모델을 일본인이라고 주장한 보수 인사들에게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0일 조각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씨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변호사)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김 변호사는 2019년 8월 소셜미디어(SNS)와 보도자료를 통해 "노동자상 모델은 1926년 일본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풀려난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 부부는 이 같은 발언이 허위 사실을 적시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인을 모델로 한 적이 없고 각종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는 취지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부부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은 김 변호사가 위자료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발언들은 단정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이자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허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노동자상이 일본인 노동자들의 사진과 흡사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판례에 따라 어떤 발언이 민법상 불법행위인 명예훼손으로 인정되려면 단순한 의견이 아닌 구체적 사실을 묵시적으로라도 적시해야 한다. 진위 판별이 가능한지가 사실과 의견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다.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떤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인다"며 "섣불리 이를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자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는 제3자로서는 알 수가 없고 진위를 증거에 의해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아울러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교과서 등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바 있다"며 "이 사건 발언들이 설혹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로서는 위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날 김씨 부부가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유사한 소송에서도 같은 취지로 원고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해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씨 부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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