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1년…인적사항 몰라도 공탁 가능
선고 직전에 '기습공탁', 선고 이후에는 '공탁 먹튀'
용이해진 공탁에 피고인은 웃고 피해자는 울고
"공탁 시기 제한 등 '꼼수공탁' 막기 위한 제도보완 필요"
대법원 전경. 법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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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A씨는 SNS에 '스타킹'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10대 여학생을 노렸다. A씨는 스타킹을 구매하기로 한 뒤 서울 강남구에서 학생을 만나 차에 태웠다. 이후 학생에게 구강성교 행위를 하게 하는 등 유사 성교 행위를 하게 했다. 그 대가로 학생에게 7만원을 보냈다. 피해자인 학생은 A씨를 용서하지도, 합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A씨는 반성한다며 선고 불과 6일 전 500만 원을 공탁금으로 냈고, 이는 감형 사유로 인정됐다.
#B씨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23살 여성 인턴 C씨를 상대로 추행을 일삼았다. 위력에 의한 폭력이었다. 회식 때마다 사단이 났다. 지난해 10월 B씨는 회식이 끝나고 택시를 기다리는 C씨의 몸을 두 팔로 꽉 껴안았다. 그 다음 달에도 추행은 이어졌다. 회식 중 C씨의 옆자리에 앉은 B씨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피해자의 손과 허벅지를 만졌다. 회식이 끝나고 나서도 C씨에게 달려들어 몸을 껴안았다. C씨는 B씨를 고소하고 용서하지 않았고, 당연히 합의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B씨는 3000만 원을 공탁했다. 이는 B씨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됐다.
지난해 12월 9일부터 개정된 공탁법에 의해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됐다. 시행 1년을 맞아, 해당 제도의 명과 암을 살펴본다.
인적사항 몰라도 '공탁' 가능해져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는 제도다.
법 개정에 따라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몰라도 공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면 공탁을 할 수 없었던 데 비해 훨씬 손쉽게 공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피고인이 감형을 노리고 공탁금을 내기 위해 불법으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내는 등 발생할 수 있는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에게도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공탁법이 개정된 이후, 제도 시행 6개월 만에 형사공탁이 60% 가량 증가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형사공탁금 신청 건수는 1486건이었지만, 6월에는 2369건으로 집계됐다.
늘어난 '꼼수공탁'…피해자는 울고 피고인은 웃고
이처럼 개정된 공탁법으로 기존의 부작용이 해소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창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는 피고인이 공탁을 하기 위해 스토킹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2차 가해나 또 다른 범죄가 저질러지곤 했는데, 상당히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라면서 "피고인이 정상참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공탁 제도가 발전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반면 공탁이 용이해지면서 '기습공탁'이 늘어나, 오히려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저해됐다는 비난도 크다. '기습공탁'은 선고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피고인이 공탁금을 던지듯 내놓는 경우를 말한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공탁했는지조차 몰라 대응도 못한 사이에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면서 공탁 사실을 감형 사유로 참작할 수도 있다.
성범죄 관련 커뮤니티 게시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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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 성범죄 관련 커뮤니티에는 '선고 2일 전 기습공탁을 당했다'며 '이래도 양형 참작돼서 집행유예를 받으면 내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징역을 보낼 것'이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기습공탁에 분노하는 피해자들의 게시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노선이 활동가는 '형사공탁특례 제도시행 1주년 점검과 보완 심포지엄'(심포지엄)에서 "기습공탁을 하는 경우 피해자가 공탁 감형을 막기 위한 의견을 제출할 시간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된다"면서 "기습공탁은 단순히 피해자의 의견제출 기회를 빼앗는 문제를 넘어, 공탁과 관련한 피해자의 의사 확인이 안 된 채로 법적 과정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큰 충격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 또한 "애초에 법원이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을 받는 건 넌센스"라면서 "형사공탁 제도를 지금처럼 운영하는 건 결국 피해자의 눈물 위에서 피고인들의 선처 여지를 확대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공탁을 해서 감형을 받으면, 피해자보다 먼저 공탁금을 회수해가는 이른바 '먹튀 공탁' 문제도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탁을 해서 유리한 양형인자로 판단을 받은 다음에 공탁금을 회수해가는 일들이 발생한다"면서 "'공탁금 회수 청구권'이라는 게 있어서 공탁금은 원래 공탁한 사람이 회수해갈 수 있는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탁금 찾으러 갔는데 '피고인이 다시 가져갔다'고 하면 상당히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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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꼼수공탁'들이 늘다보니, 최근에는 오히려 공탁금을 낸 일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되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5월 전주의 한 대학교에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여대생의 엉덩이를 휴대전화로 몰래 동영상 촬영한 D씨는 50만 원을 공탁금으로 냈지만, 전주지방법원은 "피해자는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꼼수공탁' 막기 위한 제도 보완 필요"
전문가들은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공탁 시기·공탁금 회수를 제한하는 등 '꼼수공탁'을 막도록 제도룰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이은의 변호사는 "공탁을 한 피고인과 공탁을 하지 않은 피고인을 동일하게 평가할 것인가는 재판부의 재량이지만, 피해자 의사를 타진해서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형사공탁은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윤성헌 판사는 심포지엄에서 "(기습 공탁을 막기 위해) 피고인이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이용한 공탁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제한함으로써 법원에서 피해자 의사 확인 등 충실한 양형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 또한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 의무 규정을 마련하거나, 재판부에서 공탁을 양형사유로 반영할지 여부를 결정할 경우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반드시 확인하는 내부적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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