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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지지와 공감의 손을 내밀어주세요…홀로 견디다 무너지지 않게[아듀 2023 송년 기획-상처 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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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때,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 - 회복의 여정

경향신문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피어스페셜리스트(청소년 정신건강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최승훈(가명)·김혜미(가명)·이민솔(가명) 리더가 지난달 1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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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시작 후 초기엔 혼자서 견뎌
좋아하는 사람이나 주변 권유로
상담기관·병원 찾아 치료 시작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선 ‘병식’이란 용어가 나온다. 자신이 아프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는 ‘병식’이 생기면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소개한다.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학술지 ‘청소년상담연구’(2021년 29권 1호)에 실린 ‘청소년 불안·우울 경험과 회복 과정에 대한 질적 연구’ 논문은 연구진이 우울·불안을 경험한 청소년들 8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회복 과정’에 대해 다룬다.

논문에 따르면 여러 이유로 우울·불안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자해·자살 시도, 대인관계 회피 등의 위기를 겪었다. 이들 청소년은 “선생님, 친구의 관심과 권유로 상담을 받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상담자와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약물치료를 병행함으로써 불안·우울을 극복하게 됐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5~16일 서울 시내 카페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겪은 청소년·청년 5명을 만나 ‘회복의 여정’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아픔이 시작된 초기엔 주로 혼자 견뎠다. 어린 시절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꼈던 이민솔양(18·가명)은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우울과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자해를 했다. 부모에게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나의 상태를) 이해를 못하셨어요. 아빠는 ‘다 죽어버리자’며 화가 나 있었고 엄마는 처음엔 엄청나게 울었고 그 뒤로도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김혜미양(17·가명)이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다. ‘아빠의 말들’로부터 학업 스트레스를 크게 느낀 김양은 스스로 몸에 상처를 냈다. 처음엔 부모에게 이해를 받지 못했다는 김양은 “ ‘나의 우상들’(유튜버 크리에이터들) 덕분에 제가 힘을 얻기도 했으니, ‘내가 못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해 문제를) 조금씩은 해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정수연씨(22)를 일으켜 세운 건 자신이었다. “2021년부터인가는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란 생각을 하고 억지로 억지로 저를 끌어올렸어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사는 느낌이 안 날 것 같아서 그때부터 노력하다가 지난해부터 회복 단계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이들은 부모·상담사 등 주변인의 권유 혹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에 찾아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1년 말 발간한 ‘10대 청소년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그해 7~8월 6689명 10대 청소년을 설문조사한 결과가 실려 있다. 청소년 10명 중 6명은 정신건강과 관련해 약물·치료·상담 등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지 않다’고 응답했다.

위 프로젝트·정신과·상담복지센터
10대서 인지도·이용 경험 높아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정신건강 기관(혹은 서비스) 10곳에 대해 설문한 결과, 정신의료기관(학교 안 청소년 67.2%, 학교 밖 청소년 78.7%), ‘위(Wee) 프로젝트’ 기관(51.5%, 65.0%), 청소년 상담복지센터(49.2%, 75.0%) 등 3개 기관이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이들 기관을 알고 있다는 청소년들에게 이용 경험을 물었더니 역시 위 프로젝트 기관(학교 안 23.6%, 학교 밖 60.5%), 정신의료기관(7.1%, 33.6%), 청소년 상담복지센터(3.9%, 41.8%) 등 3개 기관을 많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 경험 1순위로 꼽힌 위 프로젝트는 교육부와 교육청, 한국교육개발원이 운영하는 위기 학생 지원 프로그램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학교에 8619개 ‘위클래스’ 상담실이 있다.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청소년상담사가 배치돼 있다.

위클래스에 관한 평가는 갈렸다. 최승훈군(18·가명)은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겪은 후 처음으로 위클래스를 가봤는데 그때도 도움이 많이 됐었고 또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중학교 2학년 때는 거의 매일 갔었다”며 “(상담사가) 친절하셔서 쉬는 시간마다 위클래스에 갔었다”고 했다.

김양은 “중학교 때 위클래스를 처음 갔을 땐 너무 교과서식 상담이었다”며 “저를 이해한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고등학교의 위클래스 상담사 선생님도 저와 관련해 딱딱하게 말씀하신 게 있어서 잘 안 가고 있다”고 했다. 이양은 “위클래스는 비밀 보장이 안 된다는 느낌, 또 형식적인 반응만 해준다는 인식이 있다. 한번은 (상담사가) 자해 상처를 억지로 보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위클래스에 벽을 쳤었다”고 말했다.

자신과 맞는 상담사·의사 만나면
자해 중단 등 상처 회복에 큰 도움

최근 10~20대의 정신의료기관 이용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울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은 최군은 중학교 2학년 이후 현재까지 정신과 외래진료를 다니며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처방약이 맞아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인관계 어려움으로 18세 무렵부터 우울감이 심했다는 박지은씨(22·가명)는 처음엔 학교 교사에게 고충을 호소했지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학교를 빠지고 “아무런 정보는 없었지만 기대를 하고” 정신과를 찾아갔다. 정신과에 간다고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박씨는 여러 병원에 갔지만 치료의 효능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어떤 때는 약물 부작용에 시달렸다. 약을 계속 추가하다 보니 한때 하루 17알까지 먹었다. 올 3월 자신과 맞는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고 있다는 박씨는 “18세 때부터 지금까지 만난 의사 선생님이 한 10명은 되는 거 같다. 중간에 치료를 중단하기도 했고 나와 맞는 선생님을 찾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10~20대가 정신과 약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공부 잘하는 약’으로 잘못 알려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처방이 증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오남용 처방 의심 의사를 추적 관리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장창현 느티나무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마약의 특성을 가진 약들을 오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의사들이 처방을 쉽게 하니까 약을 구하기가 너무 쉽다는 문제가 있다. 약물을 신중하게 처방하는 문화 혹은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급자 중심의 정신건강 서비스
심리적·물리적인 문턱 더 낮춰
지역사회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정신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편견도 존재한다. 스스로 그런 인식이 있는 예도 있지만 보호자가 정신과 진료에 부정적이면 더 큰 장벽에 부딪힌다. 대부분 의료기관은 10대 환자에게 보호자의 동의·동행을 요구한다. 박씨도 부모가 정신과 진료를 반대했다. 그는 “성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혼자 병원을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는 전국 시군구가 운영한다. 9~24세 위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여성가족부와 함께 지원사업을 벌인다. 위 설문조사 결과 정신건강 기관(서비스)별 ‘도움 정도’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김양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가 자해를 중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보통 ‘자해’라는 말을 하면 다들 나쁜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분들(상담사들)은 저를 걱정해주면서 ‘알겠다’ ‘알긴 알겠지만 그래도 난 네가 걱정이 되니 웬만하면 하지 말아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에 더 와닿았다”고 했다.

이양은 “자퇴하고 나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인) ‘꿈드림센터’에 갔을 때 센터 선생님(청소년지도사)이 저를 매일매일 돌봐주셨는데 진짜 도움이 많이 됐다”며 “조용히 잘 상처를 소독해주고, 해주는 말들도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 조사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사설 상담센터도 있다. 다만 상담 비용이 1회에 10만~15만원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어느 상담기관이든 10~20대가 심리적·물리적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상담사’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5명의 회복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 모두 비영리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아픔을 이해하는 동료전문가’(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로 활동한다. 상담·강연·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10~20대의 회복을 돕는다.

“강연을 다니면서 무엇보다 제 아픔이 많이 정리가 됐어요. 스스로 쓰고 말하다 보니까요. 그리고 강연 이후 청중 중에서 어떤 분이 저를 알아보고는 ‘잘 들었어요’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거든요. 그럴 땐 뿌듯함도 느껴요.”(이민솔양)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는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은 사회를 직접 변화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리더십 교육이면서 자신의 아픔에서 주도적으로 회복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정신건강 서비스가 공급자 중심으로 돼 있다”며 “상담기관과 의료기관 밖, 지역사회(커뮤니티)에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비영리단체가 더 많아져서 커뮤니티 활동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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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미·민서영·김태훈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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