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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KT&G, 직원 동원 국회의원에 ‘쪼개기 후원’...담배 규제 로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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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내부 문건 단독 입수

조선일보

카톡방 만들고 조직적 후원 지시 - KT&G가 지난 2017년 직원 200여 명을 동원해 국회의원 4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오른쪽 사진). 당시 KT&G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직원 수십 명에게 국회의원의 후원 계좌를 공지하며 후원 지시를 내렸다(왼쪽 사진).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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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담배 업체 KT&G가 2017년에 담배 관련 규제를 막기 위해 200여 명의 직원을 동원해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쪼개기 후원은 정치자금법상 후원금 제공이 금지된 기업이나 단체, 협회들이 직원들 이름을 빌려 10만원 이하의 소액 후원을 하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KT&G, ‘쪼개기 후원’ 의혹

21일 본지가 입수한 KT&G 내부 문건에 따르면 KT&G는 2017년 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1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했다. 4명의 의원 중 2명은 현재 21대 국회의원이고, 나머지 2명은 현역이 아니다. 쪼개기 후원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문건에는 의원별로 후원을 맡을 KT&G 지사 및 부서·팀 등이 배정돼 있다.

당시 민주당 중진 A 의원에게는 ‘(서울) 동대문·성동·파주·서부지사’가 동원됐고, 65명이 후원을 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KT&G 내부 관계자는 “1명당 10만원씩 후원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650만원의 소액 후원금이 당시 A 의원 측에 제공됐다는 얘기다. 정치자금법상 1회 10만원 이하, 연간 120만원 이하의 후원금은 익명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1인당 연간 10만원까지 정치 후원금은 연말정산을 통해 전액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 경제적 손해는 없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던 민주당 B 의원에게는 ‘(서울) 북부·성북·릴리프(팀)·마포지사’ 등이 쪼개기 후원에 배정됐고, 57명이 후원에 참여(570만원)했다. 국방위원회 소속이던 민주당 C 의원에게는 ‘(서울) 종로·상상팀’이 배정됐고, 40명이 후원에 참여한 것으로 문건에 나온다. 국방위 소속이던 자유한국당 D 의원에게는 ‘(경기) 의정부·고양·포천지사’가 배정됐고, 51명이 후원했다. KT&G 내부 관계자는 “당시 4명의 의원에게 총 213명이 2130만원을 후원했다”고 말했다.

본지는 당시 KT&G가 직원들에게 조직적으로 소액 후원을 지시하는 내용이 나오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 화면도 입수했다. 당시 30명이 들어와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KT&G의 한 직원은 C 의원의 후원금 계좌를 공지하며 “입금 후 (C 의원 사무실 전화번호로) 연락 후원금 영수증 발행”이라며 “가급적 내일까지 후원 후 수요일날 취합 제출 부탁드린다”고 했다.

◇담배 규제 완화, 매출 증대 목적

KT&G가 조직적으로 쪼개기 후원을 한 배경에 대해 KT&G 관계자는 “담배 관련 규제를 막고, 담배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담배의 유해 물질과 소비자들의 신체상 피해, 질병 등의 인과관계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되면서 담배 광고 등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를 최대한 무마하기 위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쪼개기 후원을 계획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쪼개기 후원의 또 다른 목적에 대해 “군 위병소에서 군 장병 휴가·외출 복귀 시 외국산 담배 반입을 못 하게 하고, KT&G 담배만 반입할 수 있도록 했다”며 “(KT&G는) 2011년 중령급 군 출신 5명을 특채 선발해 그들의 인맥으로 KT&G 사원들이 군부대를 자유롭게 출입하게 했고, 군장병들에게 흡연 조장, 불법 판촉 활동 등을 벌였다”고 했다. 앞서 KT&G는 지난 2012년에도 직원들에게 후원금 납부를 권유하고, 2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하며 입법 로비를 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KT&G 측은 쪼개기 후원 의혹에 대해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없다”며 “향후 필요한 경우, 사실관계부터 확인해 본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A 의원과 D 의원은 “10만원 이하 소액 후원자까지 알 수는 없다”며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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