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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엔저·비과세에 거버넌스 개선까지… 버블경제 시절로 돌아간 日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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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일본거래소그룹(JPX)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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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한국 증시가 주요국 중 가장 취약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갈 곳을 잃은 투자자 상당수가 일본 증시를 향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주식 투자자에게 사랑받는 시장은 주로 미국과 중국이었다. ‘잃어버린 30년’ 이미지가 강한 일본은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낮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판도가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엔저(低)와 비과세 혜택, 기업 실적 등의 호재 덕에 일본 증시를 찾는 개미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1년 만에 254% 늘어난 韓 투자자의 日 주식 매수

2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19일까지 국내 투자자는 일본 주식 약 6911만달러(약 925억3753만원)를 순매수했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54%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 17일 기준 일본 주식 보관 금액은 34억3498만달러(약 4조597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1년 전 25억4541만달러(약 3조4070억원)보다 1조원 이상 불어난 규모다.

돈이 몰리면서 일본 주식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달 19일 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3만5000선을 넘었다. 니케이 지수가 3만5000을 돌파한 건 ‘버블경제’ 시절이던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일본 증시가 한국 개미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도 일본 정부가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한 덕에 주식시장의 매력도가 올라갔다. 작년 한 해 동안 니케이 지수는 7369포인트 상승하며 1989년(8756포인트 상승) 이후 34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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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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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학개미(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가 중학개미(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를 역전하는 이변까지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말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액(34억달러)은 2014년 초 이후 9년여 만에 중국 주식 보유액(31억달러)을 넘어섰다. 여기에 한국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액은 계속해서 최대 보유액을 경신하고 있다.

◇ 대중 수출, 한국은 줄었지만 일본은 늘어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 호황의 주된 요인으로 새로운 소액투자 비과세 제도(NISA) 도입, 엔화 약세에 따른 자금 유입, 일본 기업 실적 개선 등을 꼽는다. 일본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관행 개선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당시 일본 기업이 해외 투자자로부터 모회사와 자회사의 이중 상장, 소수 주주 권리 외면 등으로 비판을 받자 일본 정부가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이 산업 구조나 주식의 롱·숏(매수·매도) 관점에서 한국과 대비되는 시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의 상대적 약세는 이미 작년 6월부터 시작됐는데, 이 시기에 일본 증시는 급등세를 보였다”면서 “엔화 약세나 공급망 재편 등에 따라 일본 수출·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자금 이동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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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커플링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한중일 주가 추이. /하이투자증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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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상황의 주요 원인으론 통화정책 차별화와 ‘중국 리스크’에 따른 영향 차이 등이 꼽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중·일 신삼국지의 승자는 일본’이라는 보고서에서 “연초에도 이어지고 있는 한·중·일 증시간 디커플링은 통화정책 차별화와 ‘슈퍼 엔저’ 영향도 일부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가별 수혜와 피해 강도에 크게 좌우된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대(對)미 수출을 통해 큰 혜택을 얻고 있는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8년 초 대비 20% 가까이 줄었는데, 반대로 일본은 대중 수출 규모가 증가했다”면서 “이러한 차별화 현상은 일본 통화정책의 피벗 혹은 중국 경기 정상화에 따른 한국의 대중 수출 회복이 가시화되기 이전까지 지속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 일본 투자 리포트 내는 증권업계… “日 증시 강세 계속될 것”

주요 증권사도 일본 투자 상품을 출시하고, 관련 리포트를 부지런히 내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 한화자산운용은 국내 첫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만 선별해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했다. 올해 주목받는 종목인 반도체 소부장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이전까지 일학개미는 국내 ETF를 통해 일본 증시 전체와 일본 부동산투자신탁(REITs·리츠)·엔 선물에만 투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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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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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은 지난 15일 ‘역대급 엔저 사용법: 엔화 노출 ETF’ 보고서를 내고 일본 증시 관련 ETF를 추천했다. 이혜원 KB증권 연구원은 “엔선물 ETF 투자로 4.4%~7.6%의 수익률을 기대하며, 3월 중순 춘투(봄에 하는 노사 임금협상) 집계 결과를 보고 투자하는 것을 기본 방향성으로 제시한다”며 “3월 중순쯤 기본급 인상 폭이 3% 이상일 경우, 일본은행(BOJ)의 통화 전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제시했다.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투자로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일학개미에겐 엔화 비(非)헤지 형태의 니케이225 지수 인버스 ETF와 일본 국채 10년물 인버스 ETF가 제안됐다. 또 BOJ의 긴축 전환은 일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측면에서 일본 국채 10년물 인버스 ETF에 투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일본 증시의 긍정적인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초 발생한 강진 이슈를 계기로 BOJ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이 사라졌고, 외국인이 이탈한 빈자리를 개인 투자자가 메우고 있으며, 미 나스닥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나스닥 강세에 연동되는 테크·반도체에 더해, 실적 개선을 주도하는 업종들이 향후 일본 시장을 주도해나갈 것”이라며 “금융, 경기소비재, 부동산 등이 해당한다”고 했다.

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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