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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수술 언제 잡힐지 몰라 집 못가"…병원 옆 '환자방'도 동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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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뒤 항암 치료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하네요. 전북 익산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와 방 하나 구해 한 달째 살고 있는데, 파업 장기화로 계약을 연장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

21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인근 환자촌에서 만난 A씨(48)는 폐암 3기인 80대 아버지와 한 달 임대료 100만원인 환자방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폐암 수술 이후 총 6차례 항암 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고령이라 항암 치료 부작용이 문제였다. 주치료 병원이 아닌 지역 병원 응급실을 찾아 구토와 발진 등을 부작용을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항암치료 일정에 맞춰 익산에서 국립암센터까지 매번 왕복 8시간을 오가는 것도 아버지에겐 힘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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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인근에 위치한 한 환자방 전용 건물에 암환자 보호자가 들어가고 있다. 환자방은 지방에서 통원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앞둔 환자가 대형병원 인근 빌라, 고시텔 등에서 임시로 지내는 곳이다. 이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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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은 2차례의 항암 치료를 마친 뒤 4월 초 내려갈 수 있겠다는 부녀의 계획마저 차질이 생겼다. 20일 간호사로부터 “다음 5차 항암 치료 일정이 변경될 수 있고 변경되면 사전 통보해주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환자방 업주는 이번 주 내로 연장 여부를 알려달라고 하는 데 비용도 문제지만 치료 연기로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학병원 전공의 집단 파업 여파가 환자방을 덮쳤다. 환자방은 대형병원 통원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으러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와 보호자가 대형병원 인근 다세대 빌라, 오피스텔, 고시텔 등에서 임시로 지내는 곳이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과 국립암센터 인근이 환자방이 밀집한 대표적인 ‘환자촌’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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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인근 환자방 전용 고시텔의 경우엔 3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박종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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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여파로 수술‧치료가 연기되거나 조기 퇴원을 당한 환자들이 갑자기 늘다보니 환자방 품귀 대란도 빚어진다. 국립암센터 인근에서 다세대 환자방을 운영하는 한 임대업자는 “오는 22일 수술을 예약됐던 한 암환자 보호자가 수술이 무기한 연기돼 퇴원해야 한다며 수술 일정이 언제 잡힐지 몰라 환자방을 구하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이미 방이 다 차서 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 역시 환자방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서울아산병원 인근 환자방 전용 고시텔은 3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여건상 환자방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은 친척 등의 집을 전전한다. 최대 월 150만원에 달하는 임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에서 혈액암 항암 치료를 받는 이모(71·충남 당진)씨는 “병원비도 부담인데, 환자방을 쓸 경제적 여유가 없다. 김포에 거주하는 조카네에서 3일 정도 머물다 집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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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1시쯤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아산병원 인근 환자방 전용 고시텔에서 퇴실하고 있다. 박종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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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로선 환자방 임대 기간 연장도 고민이다. 충북 충주에서 70대 중반 아버지를 아산병원 인근 환자방 고시텔로 모신 정모(42)씨도 그중 하나다. 정씨는 아버지 척추 통원 치료를 위해 4일 일정으로 환자방을 잡았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아산병원 정형외과 외래 일정이 변경됐단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치료 일정이 연기되면 며칠이나 더 연장해야 하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병원에 의사 사라지자, 의사 대신 종교에 의탁하는 환자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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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인근에 위치한 한 교회는 “누가 (질병으로) 강도 만나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누가복음의 구절을 인용해 신도들을 유치하고 있었다. 이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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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으로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종교에 의탁하는 이들도 많다. 환자촌에 위치한 한 교회는 “누가 (질병으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누가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한 팻말을 입구에 붙여 홍보하기도 했다. 이 교회 목사는 설교 도중 “의료인 파업에도 무사히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건강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예배를 마치고 온 이모(65)씨는 “딸이랑 돌아가면서 대장암 환자인 남편을 돌보고 있다”면서 “지난주까지만 해도 남편의 쾌유만 빌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진료만이라도 무사히 받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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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인근 환자촌에는 환자의 쾌유를 기도하는 종교시설이 즐비하다. 이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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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쾌차를 기원하는 보살집도 성업 중이었다. 보살집을 운영하는 B씨는 “전공의 파업 소식이 알려지자, 부모님 수술이 가능한지 점을 봐달라고 했다”며 “환자의 완치와 함께 수술을 받을 수 있게끔 부적을 하나 써줬다”고 전했다.

이찬규·박종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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