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 이동환 목사 상소심서 의학계 보편적인 관점 설명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가 지난 2월 19일 서울 종로구 감리회관에서 열린 상소심 2차 공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연대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정희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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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고발인 측 증인으로 나온 민성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런 의학적 기준이 정리된 데는 학술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 압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를 전환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사례는 한명뿐이고 논문으로도 발표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세계 의학계 진단명에서 동성애 제외
이동환 목사는 2020~2022년 퀴어문화축제 등에 참석해 성소수자를 위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됐다. 교단은 이 목사의 행위가 감리회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의 제3조 제8항인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 금지를 위반했다고 본다. 감리회 재판은 2심제인데, 이 목사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혐의가 인정돼 ‘출교’를 선고받았다. 교단에서 퇴출한다는,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다.
이 목사는 재판 과정에서 해당 조항은 그 자체로 반인권적이고,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건 목회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활동이라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반면 이 목사를 고발한 측은 동성애는 이성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동성애자가 회개하고 이성애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사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맞섰다. 그렇지 않고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축복한 건 동성애를 찬성·동조했다는 논리다.
이 목사 측은 고발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상소심에서 김승섭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는 국내 대표적인 사회역학자다. 그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생존 희생자,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 소방공무원 등의 건강 문제를 추적·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성소수자의 건강을 주제로 한 연구논문은 20편 이상 출판했다. 성소수자 등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 사회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소견서 등을 제출한 적은 있지만 종교재판에 나온 건 처음이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19일 2차 공판에서 의학적으로 동성애는 정신과적 질병이 아니고, 이 때문에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의학계에서 정립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정신의학협회가 1973년 동성애를 진단명에서 삭제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1990년 마찬가지로 진단목록에서 제외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동성애 연구 역사의 첫 20년 동안은 질병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질병이 아닌 것으로 규정돼 있다”라며 “미국과 영국 등 세계의 권위 있는 의학회에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점에 논란은 없다”고 말했다.
김승섭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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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원인을 두고 의학적으로 밝혀진 게 있는지를 묻는 말에 김 교수는 “어려운 질문”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당뇨병과 암 같은 질병의 원인을 연구하는 건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며 “세계 의학계에서 인간의 특질 중 하나인 성적지향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성적지향을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성애의 원인을 묻는 질문은 필요성이 없어서 사라진 질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심리학회가 2009년 그간 출판된 논문을 검토해 전환치료와 관련한 논란을 정리했던 점도 거론했다. 학회는 동성애 전환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외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권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결론을 냈다.
김 교수는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성적지향이 바뀌는 사례를 두고 “인간은 다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의학계에서 ‘표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암환자 가운데 몇몇은 표준화된 치료를 받지 않고 산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암이 나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 의사들이 암환자에게 치료를 위해 ‘산에 들어가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성애 전환치료와 관련해서도 같은 입장이다. 또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지향을 10대에 처음 인지했을 때 이를 바꿀 수 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이를 변경하려는 시도는 상처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성소수자가 공동체 내에서 소외를 당하면서 그 고통으로 인해 나오는 진단명은 존재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누군가가 나에게 단순한 폭력보다는 상식과 합리성,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가할 때 굉장히 아프고 저항하기도 어렵다”라고 했다. 김 교수가 세계인의 가치관과 만족도 등을 조사하는 제7차 세계가치조사(2017~2021)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동성애자와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79.6%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6개국 평균(23.9%)보다 3배 이상 높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런 한국사회의 분위기에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전환을 시도한다고 했을 때 과연 ‘자발적 동기’에 따른 선택인지, 또 전환치료의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명백한 상황에서 전환을 ‘돕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운동 때문?
고발인 측이 ‘동성애에 대해 의학적·신앙적 상담이 이뤄져 탈동성애를 한 증거가 있는데 부정할 수 있나’라고 묻자 김 교수는 “논문으로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존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성애는 삶의 한 양태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캐릭터(특질) 중 하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고발인 측은 ‘결혼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것도 인간의 한 캐릭터인가’, ‘동성애가 인간의 한 양태라면 부부가 간음(혼외정사)을 하는 것도 양태’, ‘간음한다고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등의 질문을 했다. 김 교수는 질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발인 측이 ‘예, 아니요로 대답해 달라’고 말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재판위원장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고발인 측은 민성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는 연세대 의과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9년 퇴직했다. 그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동성애 반대 활동을 해왔다.
민 교수는 이날도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로버트 스피처 교수가 2001년 발표한 논문을 들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그런데 스피처 교수는 2012년 “검증되지 않는 주장을 펴서 동성애 단체에 사과한다. 내 논문을 보고 치료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낭비한 동성애자들에게도 사과한다”고 밝혔다.
민 교수는 이 목사 측이 진행한 반대신문에서 ‘세계적으로 공통된 기준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점은 수긍했다. 그러나 미국정신의학회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동성애를 진단명에서 삭제한 것을 두고는 “학술적 근거가 아니라 인권운동 때문”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단체 등의 활동 같은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는 전환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세계 의학계의 견해나 몇몇 국가에서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움직임 등을 두고 “반대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나와 같은 의견을 학술지에 칼럼으로 쓰면 잘린다. 미국의 학술적 분위기가 그렇다”고도 말했다. 이어 “저도 동성애자를 전환치료했다. (치료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례가 몇 명인가’라는 물음에 “한명”이라고 했다. 논문 출판 여부를 묻자 “이 사례를 학회에서 발표는 했지만 논문은 쓰지 않았다. 1명 케이스만으로 논문거리가 안 된다”라고 답했다.
민 교수의 이런 발언을 두고 국내 정신의학계 한 관계자는 “민 교수가 말만 하지 말고 직접 논문으로 정리해 투고했으면 좋겠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랫동안 세계 정신의학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마 논문은 작성하지 못할 것이고, 써도 학계에서 받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회원들이 2020년 7월 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교통공사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문구가 담긴 광고를 불허한 행위를 두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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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일일이 확인하고 기도하나
38년 동안 목회 활동을 하는 감리회 소속 박경양 목사도 증인석에 섰다. 그는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을 성안하는 데도 관여한 경험이 있다. 박 목사는 2015년 동성애 찬성·동조 금지 조항이 제정될 때 입법의회에 장정개정위원으로 참석했다. 박 목사는 “동성애 관련 조항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라며 “이 조항을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조항에 삽입해 상정하고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동환 목사가 성소수자 축복식을 이유로 재판을 받는 상황을 두고 “목회자의 축복기도는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성도 중에 동성애자가 있으면 이를 다 확인한 다음에 축복해야 한다는 말인가.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비판했다. 박 목사는 교단 내에서 벌어지는 반동성애 활동의 진실성에 의문이 든다는 취지로도 말했다. 이들이 과거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등에 위헌결정을 내렸을 땐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성경 45곳 이상에서 간음은 죄라고 규정하고 심지어 십계명에도 간음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통화에서 “감리회 내 간통이나 성추행 사건이 터져 문제가 됐을 때도 동성애를 문제 삼는 이들은 조용했다”라며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을 것으로 의심했다.
총회재판위원회는 오는 3월 4일 선고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출교를 선고한 1심 판결이 최종 확정될지, 아니면 결론이 뒤집힐지 주목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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