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9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소년중앙] 국밥·짜장면·피자·떡볶이…대표적 외식메뉴, 언제부터 인기였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00년 된 설렁탕집 갈까, 50년 된 떡볶이집 갈까

외식하다보니 '한국 현대사'가 맛있네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지 않고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행위나 그런 식사를 외식(外食)이라 해요. 길을 걷다 보면 한식·양식·일식 등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즐비하죠. 우리는 멀리 그 나라까지 가지 않아도 치킨·피자·파스타·초밥 등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식이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여가의 일부로 자리 잡고, 우리의 식탁이 세계화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에요. 그 과정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오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중앙일보

오수아(경기도 하랑초 5) 학생기자·이예준(서울 도성초 4) 학생모델·김서호(서울 자곡초 4·왼쪽부터)학생기자가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아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외식 역사에 대해 살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외식의 개념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1945년 광복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전후 복구 시기에 '밖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 끼니를 해결하는 일에 가까웠죠.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점차 발전하면서 외식은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만의 취향을 즐기는 수단이 됐어요. 마침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외식생활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서울생활사박물관(서울 노원구)의 기획전시 '서울 외식 이야기-오늘 뭐 먹지?'가 3월 31일까지 열리고 있어 소중 학생기자단이 찾아갔습니다. 전시를 본 뒤에는 50여 년 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떡볶이집도 가 봤어요.

1950~1970년대 중반: 강북을 중심으로 한 끼니형 외식

‘서울 외식 이야기’에서는 서울 외식업의 전개 과정을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서호·오수아 학생기자와 이예준 학생모델은 김현영 학예사의 안내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를 다룬 1부 ‘채우는 식탁’을 먼저 둘러봤어요. "서울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강북이 중심이었던 도시예요. 당연히 강북을 중심으로 도시 노동자 밥집이 형성되었는데,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끼니형 음식점 메뉴는 설렁탕·해장국·곰탕·추어탕 등이었어요."

중앙일보

1955년 서울 중심가에 있는 상점들의 위치를 표시해 발행한 광고용 약도인 '상계약도'. ⓒ서울생활사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식을 할 수 있는 음식점은 사람·물품·재화가 모이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생겨나기 마련이죠. 김 학예사의 설명처럼 해방 전 서울에는 전통적으로 상업이 발달한 종로나 일제강점기에 상업지구로 급부상했던 청계천 남쪽 골목 등지에 음식점이 많았어요. 전시실에서는 1954년 제작된 서울 지도인 '뉴 서울'과 서울 중심가에 있는 주요 상점의 위치를 표시한 광고용 약도 '상계약도'(1955)를 볼 수 있었는데요. 유심히 살피던 수아 학생기자가 "당시에는 한강의 북쪽과 영등포 정도까지가 서울의 영역이네요"라고 했죠. 해방 이후에는 청계천 일대에 시루떡·빈대떡·곰탕·설렁탕·순댓국·선짓국·막걸리 등을 판매하는 길거리 음식점이 생겼고, 종로·을지로·명동 일대에는 '밥+국+반찬'으로 구성된 한상차림을 파는 백반집도 적지 않았죠.

중앙일보

1939년 서울 중구 삼각동 골목에서 영업을 처음 시작한 하동관의 곰탕. 국밥은 해방 직후 서울 노동자들의 배를 채워주던 끼니형 외식의 대표주자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식점으로 일제강점기에 종로 화신백화점 뒷골목인 이문동에서 1902~1907년 사이 문을 연 설렁탕집인 이문설농탕, 1937년 나무시장이 열리는 종로 청진동 골목에서 시작한 해장국집 청진옥, 1939년 중구 삼각동에서 영업을 시작한 곰탕집 하동관 등을 꼽을 수 있어요. 예준 학생모델이 전시실 안에 모형으로 재현된 이문설농탕의 대표 메뉴 설렁탕을 살폈죠.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곁들어진 모습이었는데, 단출해 보여도 든든한 한 끼 구성입니다.

국밥은 조선시대부터 보편화한 외식 메뉴이기에 자연스럽게 해방 이후에도 많이 팔렸죠. 게다가 광복 이후 물가가 오르면서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뜨끈한 국밥은 일터에서 끼니를 챙겨 먹고, 퇴근 후 술 한 잔을 기울이는 도시 노동자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접근성 좋은 외식 메뉴였어요.

중앙일보

왕십리에서 60여 년간 영업하다 재개발로 역삼동으로 이전 후 철거한 해장국집 대중옥의 미닫이문을 살펴보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는 정부가 추진한 혼분식장려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음식점·분식점 등 밀가루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점들이 서울 외식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수아 학생기자가 "혼분식장려운동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김 학예사가 "혼식은 밥을 쌀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일정량의 잡곡을 섞어 짓는 것을 뜻하고, 분식은 밀 같은 다른 곡식으로 만든 먹을거리를 밥 대신 먹는 것을 뜻해요"라고 설명했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곡은 쌀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수탈,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1970년대 중반 종자 개량, 다양한 농자재 보급, 정부의 강력한 쌀 증산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만성 쌀 부족에 시달렸죠. 그래서 정부는 쌀 소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혼분식운동을 장려하고, 막걸리·청주·소주·떡볶이 등을 미국산 밀가루나 외국산 곡물로 만들도록 강제했어요.

중앙일보

농촌진흥청에서 1968년 발행한 분식 장려 홍보 리플릿.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원조로 받았던 밀가루 봉투가 있었어요. 봉투 앞면에는 '미국 국민이 기부한 것이니 팔거나 교환하지 마세요(Donated by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Not to be sold or exchanged)'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죠.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소비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의 우방국을 돕기 위해 1955년부터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밀을 지원했었죠.

중앙일보

한국전쟁이 끝난 뒤부터 한국이 미국의 원조로 받았던 밀가루 봉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지름 22cm에 높이 21cm의 항아리처럼 생긴 주황색 절미통도 전시됐어요. 쌀 생산량이 부족했던 1960~70년대에 쌀을 적게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통이죠. 당시 집집마다 부뚜막에 절미통을 두고, 밥을 짓기 전에 쌀 한 줌씩을 통에서 덜어내 사용했죠. 절미운동은 1980년대 이후 쌀 생산 증대와 혼분식 대중화로 사라졌어요.

이 시기 떡볶이·라면·짜장면·칼국수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급부상했고, 중국집과 분식집이 점점 증가해 친숙한 외식 음식점으로 자리 잡았죠. 1972년 창업한 떡볶이 전문점인 철길떡볶이, 1964년 개업한 중국음식점 신승관 등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식점입니다.

중앙일보

한국전쟁이 끝난 뒤부터 한국이 미국의 원조로 받았던 밀가루 봉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 외식, 여가생활이 되다

김 학예사가 "이제 외식이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여가생활'로 인식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를 다루는 2부 ‘나누는 식탁’을 관람해봅시다"라며 소중 학생기자단을 옆 전시실로 이끌었어요. 서울의 인구는 해방 후 약 100만여 명이었지만, 1967년에는 400만여 명, 1979년에는 800만 명을 넘는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농촌을 떠나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서울의 인구밀도를 낮추기 위해 지역 확장과 인구 분산 정책을 펼쳤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과거 서울은 강북이 중심인 도시였어요. 정부는 1977년 '3핵 도시 구상'을 통해 서울의 도시 구조를 기존 강북 중심의 단핵 도시에서 강북 도심-여의도·영등포-강남(영동·잠실), 3핵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어요." 기존에는 농사를 짓는 땅과 허허벌판이 대부분이던 강남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기존 도심이던 강북(을지로)-영등포-강남을 연결하는 지하철 2호선이 들어선 것도 3핵 도시구상의 결과물인 겁니다.

중앙일보

3핵 도시 구상과 지하철 2호선 개통으로 서울은 다핵화됐으며, 이는 외식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도시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1970~80년대에는 육류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어요. 1970년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이 시작되면서 가정마다 자가용을 보유하는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렸고, 관광·여가 문화가 퍼졌죠. 또 경인·경부·호남고속도로가 착공·개통되면서 각 지방에서 생산된 식재료들이 서울로 쉽게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시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육류 소비가 확대됐어요.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1976년부터 소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죠.

이 시기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가정의 외식문화를 대표하는 장소가 바로 식당 내부에 정원을 조성한 가든형 갈빗집입니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정원의 꽃·나무·연못 등을 감상할 수 있는 형태로, 주로 자가용으로 접근하기 용이한 숲속에 있는 경우가 많았죠. 가든형 갈빗집은 1970년대 후반 영업을 시작한 삼원가든을 필두로 1980년대에 성행했는데, 생일·어린이날·결혼기념일·졸업식 등 가족행사를 위한 외식의 공간으로 사랑받았죠. "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주말이 되면 자가용으로 함께 외출하여 전원에서 식사를 즐기는,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는 ‘현대적 외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어요."

중앙일보

김현영(맨 왼쪽)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해방 직후부터 현대까지 서울 내 외식산업의 흐름을 설명했다.



주머니가 얇아서 불고기·고기구이 등 살코기를 먹을 수 없던 사람들은 곱창·순대와 같은 고기 부산물을 즐겼죠. 1980년대 형성된 중구 황학동곱창골목, 1977년 전후로 형성된 관악구 신림동순대타운 등은 도시의 중심이 다핵화로 여러 곳이 되고,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내 이동이 쉬워지면서 성장한 회사원·노동자·대학생이 주 고객층인 음식골목이죠.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 외식의 세계화

배를 채우기 위한 끼니형 음식점, 쌀을 아끼기 위한 혼분식 장려, 경제성장에 힘입은 육류소비 증가를 거쳐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의 외식문화는 세계화됩니다. 전시 3부 ‘즐기는 식탁’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서울 외식문화의 변화상을 다룹니다.

중앙일보

바비큐·카페 음료·피자·빵 등 서구 식단은 1990년대 외식 산업의 세계화 이후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호 학생기자가 "현대 외식 문화에서 서양 음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라고 궁금해했어요. "이 시기 서울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인들의 거주가 증가하고 아울러 한국인의 외국 관광과 체류가 활발해졌어요. 경제적 조건만 갖추어지면 서울에서 외국의 맛있는 음식과 음료, 심지어 주류까지 맛볼 수 있게 됐죠." 앞서 1980년대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추진됐어요. 1983년 정부가 50세 이상 국민의 관광 목적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것을 기점으로 1989년부터는 병역 미필자 등 ‘해외여행 제한자’를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의 전면적 자유화를 시행, 해외에서 현지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늘어났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프랜차이즈도 이 시기 한국에 상륙을 시작했어요. 1985년에는 미국식 피자 전문 프랜차이즈인 피자헛 1호점이 이태원에, 1988년에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 1호점이 압구정에, 1992년에는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 1호점이 서초구 양재동에 문을 열고 점차 다른 지역으로 매장을 확산하는 등 서구식 식단이 한국인의 외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죠.

외국인이 많이 살던 이태원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도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해외 유명 음식들을 현지의 맛을 살리거나,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조리하는 방식으로 서울에서 자리 잡았어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외국 음식점 외에, 현지인이 운영하는 외국 음식점도 성행 중이에요. 행정자치부 통계에 의하면 2021년 11월 기준 42만6743명의 외국인이 서울에 거주하죠. 이들은 국적별로 집단을 이루어 사는 경향이 있어 해당 지역에 가면 그 나라 음식을 파는 음식점을 비롯해 식자재를 유통하는 식품점도 여럿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필리핀타운과 창신동 네팔타운, 중구 광희동 몽골타운, 성동구 왕십리 베트남타운, 서대문구 연희동 차이나타운, 용산구 이태원동 나이지리아타운 등이죠.

중앙일보

왕십리·황학동 곱창골목, 건대양꼬치거리 등은 서울 도심의 다핵화와 세계화로 생겨난 음식점 골목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 타운 안에 위치한 외국 음식점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인에게도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곳이 '건대양꼬치거리'로 불리는 광진구 자양동 차이나타운입니다. 초창기 고객은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이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인들도 양꼬치·마라탕·마라룽샤·훠궈·삭도면 등을 즐기기 위해 찾는 명소가 됐죠.

예준 학생모델이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외식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혼밥’과 ‘혼술’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또한 퇴근 후에 술자리를 갖는 대신 점심시간에 카페를 가는 점심 회식이 늘어났고, 술잔을 서로 돌려가며 마시는 ‘잔돌리기’ 문화 역시 위생 문제로 사라졌어요."

지금까지 서울 외식 문화의 변화를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살펴봤는데요. '서울 외식 이야기-오늘 뭐 먹지?' 전시에 등장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들은 지금도 서울 곳곳에 남아있어요. 그중에서 정부가 혼분식을 장려하던 1972년경 영업을 시작한 떡볶이 전문점 철길떡볶이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찾아갔습니다.

중앙일보

50여 년이 넘도록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서대문구 철길떡볶이를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철길떡볶이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에서 노점으로 시작했어요. 당시 주변에 있던 연세학원·종로학원과 이화여고·인창고 학생들의 사랑을 받던 떡볶이집이었죠. 이후 1999년 현재 건물인 서대문구 충정로 35-6으로 이전했어요. 상호가 '철길떡볶이'인 이유는 점포가 경의선 철길 옆에 있기 때문이죠. 서호·수아 학생기자와 예준 학생모델이 건물 뒤편 야외 좌석을 둘러봤는데, 테이블 앞으로 경의선 철길이 바로 눈앞에 들어왔어요. 철길떡볶이는 이 독특한 구조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답니다.

비가 한창 내리고 있었지만 점심시간을 앞두고 찾은 철길떡볶이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떡볶이 2인분, 순대 2인분, 야끼만두 튀김 1인분, 김말이 튀김 1분을 시켜 테이블에 앉았죠. 제일 좋아하는 외식 메뉴 중 하나가 떡볶이라는 수아 학생기자는 떡볶이에서 젓가락을 뗄 줄 몰랐고, 서호 학생기자와 예준 학생모델은 "순대도 더 먹고 싶어요"를 외쳤죠. 1970년대 쌀 부족으로 장려되던 분식은 지금 외식 시장의 한 축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분식은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실시한 혼분식 운동의 일환이 그 출발점이지만, 오늘날 외식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언제 밥 한 끼 같이 먹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소통과 교류의 의미가 담긴 안부인사로 통하죠. 이처럼 밥상을 공유하는 일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식은 함께 먹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죠. 또한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내 취향에 맞는 음식을 혼자 즐기는 '혼밥'도 낯설지 않은 문화가 됐어요.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변화해온 외식 문화,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경향이 나타날까요. 여러분 주변에 있는 음식점들을 살피며 열심히 관찰해 보세요.

■ 서울 외식 이야기-오늘 뭐 먹지?

장소: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174길 27 서울생활사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3월 31일(일)까지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휴관)

요금: 무료

문의: 02-3399-2900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중 학생기자단의 외식 이야기

외식은 가족·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순간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해 소비하는 행위이기도 해요. 그래서 연령대별로 선호 외식 메뉴가 다른 경우가 많죠. 취재에 참여한 소중 학생기자단 세 사람은 어떤 외식 메뉴를 선호하며, 가족과는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또한 이들의 부모님이 선호하는 외식 메뉴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서호 학생기자



부모님 선호 외식 메뉴: 연탄불 생선구이와 꼬치구이

아버지는 연탄불 생선구이, 어머니는 꼬치구이를 가장 좋아하세요. 아버지가 연탄불 생선구이를 좋아하시는 이유는 생선구이는 집에서 냄새와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잘 해 먹지 못하는데, 밖에선 그럴 염려 없이 맛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래요. 어머니는 소·돼지·양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다양한 부위별로 조금씩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어서 꼬치구이가 좋으시대요.

서호 학생기자 선호 외식 메뉴: 고기구이

제가 가장 선호하는 외식메뉴는 고기구이입니다. 일단 고기가 맛이 좋고요. 식구들이 다같이 모여 앉아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때 행복해져요. 고기를 구울 때는 제가 아버지·어머니 대신 요리사가 될 수 있어서도 좋아요. 한 점 한 점 정성껏 구워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면, 잘 구웠다고 맛있다고 많이 칭찬해 주십니다. 그래서 외식 때 우리 집 고기굽기 담당은 저예요.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예준 학생모델

부모님 선호 외식 메뉴: 한우

부모님께서는 한식·양식·아시아식·멕시코 음식 등 외식으로 접할 수 있는 많은 음식을 좋아하세요. 그중 한우를 가장 좋아하시는데, 고소하고 진한 한우의 맛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날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한우를 즐겨 먹죠.

예준 학생모델 선호 외식 메뉴: 샤부샤부와 퐁듀

제가 선호하는 외식 메뉴는 샤부샤부예요. 많은 재료를 넣어서 다양한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고 여러 가지 야채와 고기를 먹으며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 몸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외식 메뉴는 퐁듀예요. 퐁듀는 빵·채소·과일 등을 녹인 치즈에 넣어서 먹는 음식인데요. 자주 가던 퐁듀집이 없어져서 슬펐지만, 최근 새로운 맛집을 알아내서 좋았어요. 꽤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집에서 멀어서 그런 식당이 있는 줄 몰랐어요. 방문했을 때 식당 가운데에 있는 난로가 따듯하게 데워주어서 좋았죠. 퐁듀를 먹을 때는 치즈가 쭉쭉 늘어나서 재미있었어요. 두 가지 퐁듀를 먹었는데 모두 맛있어서 또 가고 싶어요.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수아 학생기자

부모님 선호 외식 메뉴: 초밥

평소에도 해산물을 즐겨 드시는 우리 부모님의 선호 외식 메뉴는 초밥이에요. 그래서 초밥을 배달해서도 자주 드시고, 식당에서도 자주 드세요. 제가 생각해도 초밥은 먹기 간편하고 맛있는 외식 메뉴인 것 같아요.

수아 학생기자 선호 외식 메뉴: 떡볶이와 파스타

저는 떡볶이와 파스타를 좋아해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떡볶이는 떡이 쫄깃하고 맛도 있어 자꾸 눈길이 가요. 떡볶이를 김밥이랑 같이 먹으면 떡볶이가 우리나라 음식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죠. 이번 취재에서 철길떡볶이에 갔을 때 떡볶이를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요리연구가 겸 방송인 백종원이 우리나라 음식을 여러 나라 곳곳에서 외식으로 소개하는 걸 봤는데, 우리나라 음식이 널리 퍼지고 있어 뿌듯해요. K-팝만큼 K-푸드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식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방문해 '서울 외식 이야기-오늘 뭐 먹지?'를 관람했어요. 외식은 저의 관심 분야라서 취재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렜죠. 박물관에 들어가니 규모도 크고 전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점 및 이들의 대표 메뉴 모형과 참고 영상들이 있었어요. 영상들과 전시물을 보고 나니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할머니는 예전에 이렇게 사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박물관 취재를 마치고 기자님과 함께 한참 차를 타고 철길떡볶이라는 분식집에 갔는데요. 무려 5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된 떡볶이집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떡볶이·순대·튀김을 먹었는데, 순대가 정말 맛있었어요. 서대문구에 가 보신다면 철길떡볶이를 꼭 들러보세요. 그리고 떡볶이만 주문하시지 말고 순대도 함께 주문해 보세요. 이번 취재는 배움도 얻고 배도 부른 최고의 취재였습니다.

김서호(서울 자곡초 4) 학생기자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 외식 이야기-오늘 뭐 먹지?'를 관람하며 우리나라 외식 문화의 변화를 서울을 중심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도 자세히 알 수 있었죠. 저는 많은 음식점 이름들을 다 표시해둔 상계약도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보면서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도 상계약도가 제 눈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여러 식당 중 50여 년이 된 철길떡볶이집에 갔습니다. 도심 속 높은 건물들 사이에 아주 낮은 천장에 낡은 모습을 한 떡볶이집이 있어 놀랐고, 떡볶이가 정말 맛있어서 또 놀랐어요. 다음에 친구들과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수아(경기도 하랑초 5) 학생기자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시민들의 의식주 같은 생활 문화와 관련된 전시를 하는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가서 서울의 외식문화에 대한 전시를 관람하고, 관련 내용을 배웠어요. 1950~1960년대에는 외식을 하는 이유가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돼 신기했죠. 또한, 요즘에는 건강을 생각해 챙겨 먹는 잡곡밥을 옛날에는 쌀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먹었다는 사실이 재밌었어요. 전시 관람 후 찾은 철길떡볶이에서 먹은 떡볶이도 정말 맛있었어요. 서울생활사박물관과 철길떡볶이를 또 방문하고 싶어요.

이예준(서울 도성초 4) 학생모델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서호(서울 자곡초 4)·오수아(경기도 하랑초 5) 학생기자·이예준(서울 도성초 4) 학생모델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