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모두 43개 식당이 꼽혔다. 대중의 관심은 고급 레스토랑보다 ‘빕구르망(4만5000원 이하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으로 쏠렸다. 빕구르망에 선정된 15개 식당의 면면이 드러나자 의외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식당이 수두룩했다. 돼지국밥집 2곳, 냉면집 2곳 빼고는 모두 외국 음식 전문점이었다. 밀면, 대구탕, 꼼장어(먹장어) 구이 등 관광객이 부산에서 꼭 찾는 음식은 없었다. 대신 일본 식당이 5곳 꼽혔고, 태국과 대만 식당도 포함됐다.
김주원 기자 |
미쉐린은 전 세계 공통 기준만 밝힐 뿐, 의아한 선택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15개 식당 중 7곳을 가봤다. 맛은 둘째 치고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식당이 깔끔했고, MZ세대가 ‘감성 맛집’이라고 할 만한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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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같은 돼지국밥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자리한 합천국밥집은 부산사람이 외지인에게 자신있게 소개하는 돼지국밥집이다. 육수가 평양냉면처럼 맑고 고기는 푸짐하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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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사람의 ‘소울푸드’는 누가 뭐래도 돼지국밥이다. 부산에만 돼지국밥을 내는 식당이 600개가 넘는다(2019년 한국외식업중앙회). 수많은 돼지국밥집 중에서 미쉐린은 남구 용호동의 ‘합천국밥집’과 남천동의 ‘안목’을 빕구르망으로 선정했다.
부산에서는 ‘국밥집 취향만 봐도 어떤 입맛인지 안다’고 한다. 25년에 걸쳐 2대를 이어온 ‘합천국밥집’은 말갛게 끓이는 돼지국밥으로 부산에서 정평이 났다. 천병철(65) 사장은 “육수는 오래 끓이는 것보다 어떤 부위를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합천국밥집은 잡뼈 없이 돼지의 앞다리 뼈로만 육수를 낸다.
합천국밥집은 천병철 사장이 매일 육수를 직접 끓인다. 잡뼈를 넣지 않고 돼지 앞다리 사골을 낸다. 사진은 사골로 국물을 우린 뒤 국밥과 수육으로 쓸 고기를 삶는 모습.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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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만 보면 돼지국밥이 아니라 평양냉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빛깔이 맑다. 고기 누린내 때문에 돼지국밥을 꺼리는 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큼 잡내가 거의 안 난다. 심심한 국물과 달리 멍게를 넣은 무김치와 부추겉절이 등 밑반찬은 간이 적당히 센 편이어서 궁합이 좋다. 간장‧식초‧매실액 등을 섞은 수육 소스도 감칠맛이 대단하다. 수육에는 앞다릿살‧삼겹살 외에 구이용으로 즐겨 먹는 항정살이 함께 올라왔다. 천 사장은 “불황이어도 식재료만큼은 질 좋은 국산을 고집한다”면서 “정성과 재료를 아끼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돼지국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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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을 포기한 까닭
부다면옥은 평양냉면 불모지에 가까운 부산에서도 서울의 오래된 냉면집 뺨치는 맛을 자랑하는 집이다. 해운대전통시장 초입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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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대중 음식이라면 역시 밀면이다. 그러나 미쉐린은 밀면이 아닌 평양냉면집 두 곳을 선택했다.
부다면옥의 물냉면. 육향이 진한 평양냉면으로, 절임무와 오이는 따로 내준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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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장은 “냉면 애호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일부러 2층에 자리 잡았다”며 “여전히 양념장을 찾거나 맹물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맛으로 설득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력은 짧지만, 냉면 맛이 얕지는 않다. 진한 한우 육향과 순메밀면의 고소한 맛이 조화롭다. 식초와 겨자, 따로 내준 절임 무와 오이를 안 넣고 냉면 고유의 맛을 음미하는 재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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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가 살살 녹네
부산 북구 화명동의 '슌사이 쿠보'. 나고야식 민물장어덮밥 '히츠마부시'가 대표 메뉴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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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부산은 일본과 왕래가 잦았다. 그 까닭에 부산 구석구석에 일본의 맛이 스며 들어있다. 부산 북구 화명동의 ‘슌사이쿠보’는 일본 나고야의 향토 음식 ‘히츠마 부시(민물장어 덮밥)’로 이름난 가게다. 민물장어는 보양식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두루 사랑받는다. 우리에겐 소금구이나,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 방식이 친숙하다. ‘슌사이쿠보’는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비늘을 제거한 민물장어를 뜨거운 김에 찐 뒤, 5년 이상 숙성한 특제 간장 소스를 겹겹이 발라가며 숯불에 굽는다. 흙내와 비린내는 없애고 부드러운 식감과 불향을 살리는 비법이다.
민물장어를 증기로 한 번 쪄낸 뒤 양념을 묻혀 굽는데, 식감이 부드럽고 불향이 살아 있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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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오너 셰프 대표(40)는 “장어가 밥알과 따로 놀지 않고 동일한 식감을 내도록 조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사카의 미쉐린 1스타 식당 ‘스시 도코로 쿠로스기 ’를 비롯해 일본에서만 10년의 요리 경력을 쌓았다. 소금과 누룩 등에 2주 이상 발효한 채소 절임, 계란찜 등 밑반찬 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진다. 술안주로 내는 고등어 초절임(시메사바)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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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이어온 일본 라멘
부산 해운대의 일본 라멘집 '나가하마 만게츠'. 36시간 끓인 돈사골로 육수를 낸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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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하마 만게츠’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1963년부터 3대째 이어온 라멘 가게의 첫 한국 지점이다. 2018년 해운대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소박한 야타이(포장마차) 컨셉트이지만, 부산에서는 오픈 키친과 ‘ㄷ’자 바 테이블을 갖춘 레스토랑으로 규모를 키웠다. 일본 라멘은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국물 내는 방법에 따라 다르고, 라멘에 들어가는 고명과 면의 종류에 따라 또 다르다. 나가하마 만게츠는 돼지 사골 육수에 차슈(구운 돼지고기)와 얇은 면을 곁들이는 ‘하카타 스타일’을 고수한다. 안병도 매니저는 “36시간 우린 육수에 50년 비법 소스를 곁들여 맛을 낸다”고 말했다. 메뉴는 라멘과 나가하마라멘, 야끼교자(일본식 군만두)가 전부다. 면은 삶는 시간(6, 13, 22, 33초)을 고를 수 있다. 꼬들꼬들한 식감을 선호한다면 13초가 적당하다. 조리 방식은 현지 그대로지만, 매운 다진 양념 같은 ‘부산 스타일’도 가미했다. 라멘에 딸려 나오는 크림치즈 디저트도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다. 1000원짜리 공깃밥에도 차슈가 올라간다.
나가하마 라멘과 야끼만두. '나가하마 만게츠'에서 파는 유일한 라멘이자 사이드메뉴다. 라멘을 주문하면 디저트로 크림치즈가 나온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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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아니라 우육면
남천동 주택가에 자리한 대만 우육면 전문 식당 뉴러우멘관즈. 타이베이의 식당을 옮겨놓은 것 같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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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쟁쟁한 중식당이 많다. 남다른 내공의 노포부터 차이나타운 만둣집, 특급호텔 중식당까지 경쟁이 치열하다. 한데 미쉐린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파는 중화요릿집이 아니라 젊은 감성의 대만음식점 2곳을 선택했다.
뉴러우멘관즈의 대표 메뉴인 우육면. 대만 본토 맛을 재현하고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매콤한 맛을 더했다. 오른쪽은 곁들임 메뉴로 인기인 대만식 돼지갈비 돈까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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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동에 자리한 뉴러우멘관즈(牛肉麵館子)는 이름 그대로 우육면 전문 식당이다. 이 식당을 포함해 부산에서 5개의 중식당을 운영 중인 사공승열(42) 사장이 2021년 개업했다. 생김새만 보면 타이베이의 어느 식당을 옮겨온 것 같다. 간판과 메뉴가 모두 한자로 쓰여 있고, TV에서는 대만 방송이 나온다. 우육면을 먹어봤다. 탱글탱글한 면발과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 절인 갓의 조합이 좋다. 사공 사장은 “부산 사람의 입맛을 고려해 국물에 매운맛을 더했다”고 말했다. 대만식 돼지갈비 돈가스와 새우 물만두는 곁들임 메뉴로 인기다.
바오하우스에서 파는 클래식 바오. 찐빵 안에 삼겹살, 고수, 할라피뇨를 넣었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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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거리로 유명한 전포동의 ‘바오하우스’도 대만 음식 전문점이다. 우육면과 마파두부도 유명하지만, 대만식 찐빵 ‘바오’ 맛집으로 통한다. 대표 메뉴인 클래식 바오를 한입 베어 먹었다. 삼겹살과 할라페뇨, 고수 그리고 찐빵의 조화가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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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시장 옆 방콕풍 선술집
광안종합시장 옆에 자리한 피리피리. 태국 선술집 분위기가 느껴진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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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로 따지면 광안종합시장 옆에 자리한 ‘피리피리’도 뒤지지 않는다. 큼직한 태국어 간판, 내부를 가득 채운 태국 사진과 식재료, 현지식에 가까운 맛이 방콕 선술집 그대로다. 식당 영업도 저녁(오후 5시 30분~자정)에만 한다.
피리피리는 역사가 길지 않다. 2022년 5월 개업했으니 두 돌이 채 안 됐다. 서울의 여느 타이 레스토랑처럼 태국인 주방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부산 MZ세대 사이에서 태국 현지 맛 뺨치는 식당으로 인정받고 있다.
피리피리에서 맛본 푸팟퐁커리와 팟타이, 똠얌꿍. 향신료를 아끼지 않고 넣어서 태국 현지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승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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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피리의 대표 메뉴인 푸팟퐁커리와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인 똠얌꿍, 한국인이 두루 좋아하는 볶음 국수 팟타이를 먹어봤다. 백영수(36) 사장이 가장 자신 있는 메뉴라는 푸팟퐁커리는 푸짐했다. 껍질이 연한 태국산 게가 아니라 꽃게를 쓰고 새우까지 넉넉히 들어 있었다. 매콤한 레드커리와 해산물의 궁합이 좋아서 밥도둑, 맥주 도둑이라 할 만했다. 국내 태국식당 중 국물이 너무 가볍거나 인공조미료 맛이 강한 똠얌꿍을 내는 집이 많은데 피리피리 음식 중에서도 똠얌꿍은 가장 태국 현지식에 가까웠다. 똠얌꿍에 오징어도 들어 있었다. 백 사장은 “레몬그라스, 갈랑가(태국 생강), 샬롯(미니 양파) 등 태국 음식의 핵심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 기대 너무 컸나…1스타 3곳 그친 부산
1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된 '피오또'의 이동호(34), 김지혜(32) 셰프 부부. '피오또'는 '그린 스타(지속가능한 미식' 부문도 동시 수상했다. 백종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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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4’에 선정된 레스토랑은 모두 33곳(3스타 1곳, 2스타 9곳, 1스타 23곳)이다. 부산에서는 3곳만이 1스타를 받았다. 2스타 이상의 레스토랑은 없었다.
올해 ‘미쉐린 가이드’는 한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서울 아닌 도시(부산)를 다뤄 발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부산이 거는 기대도 컸다. 지난해 6월 부산이 ‘미쉐린 가이드’ 발간 도시로 선정되자, 박형준 부산시장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레스토랑 지침서”라며 “음식‧문화‧관광을 연계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도약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특히 부산의 특급호텔이 단 한 곳도 별을 받지 못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시그니엘 부산의 중식당 ‘차오란’ 만이 ‘미쉐린 셀렉션(등급이 없는 추천 식당)’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부산은 코스 요리 중심의 파인 다이닝보다 뷔페 레스토랑이 강세여서 미쉐린의 취향을 맞추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에 대해 그웬달 뿔레넥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부산에서 선정된 식당 수가 많지는 않지만, 글로벌 항구 도시로서 역량이 충분하기에 향후 다양한 레스토랑이 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부산 시그니엘 호텔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4' 발간 행사에서 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셰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체 33곳의 스타 레스토랑 중 부산 지역에서는 1스타 레스토랑만 3곳을 배출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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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1스타에 오른 식당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오또(해운대구 중동)’, 일식당 ‘모리(해운대구 중동)’, 프렌치 레스토랑 ‘팔레트(남구 용호동)’ 3곳이다. 피오또의 이동호·김지혜 셰프 부부가 ‘그린 스타’의 영광도 함께 누렸다. 그린 스타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음식을 추구하는 식당에 부여하는 상이다. 피오또는 채소와 과일 대부분을 경북 영천의 가족 농장에서 재배해 사용한다. 이동호 셰프는 “단순히 요리를 내는 식당이 아니라, 채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현재 휴업 상태인 ‘모수(안성재 셰프)’가 유일한 3스타 레스토랑에 올라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모수는 운영을 맡았던 CJ제일제당과 계약이 종료되면서 올 초 문을 닫았다. 미쉐린 가이드 관계자는 “상반기 재오픈을 앞두고 있어 선정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부산=최승표·백종현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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