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시토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3월8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는 사실상 정상급인 만큼 그 외국 방문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르반의 방미는 독특했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비롯해 미 행정부의 현직 인사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하고만 대화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명백히 바이든을 무시한 행위다. 백악관이 오르반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CNN은 오르반이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것을 확신하는 게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많은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떨고 있지만 적어도 부다페스트(헝가리 수도)에서만큼은 트럼프의 복귀가 매우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일보

지난 3월8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 SNS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보다 앞선 올해 2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워싱턴 특파원이 ‘일본 정부가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로비를 강화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일본의 로비 강화는) 트럼프와 접촉하는 데 소극적 태도를 유지해 온 한국과는 대조적’이란 문장이 들어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 대통령실이 바이든과의 관계를 의식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트럼프 캠프 인사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뒤 이 구절이 온라인에서 삭제됐다고 한다. 트럼프 측에서 반발할 것을 감안해 한국 정부가 기사 수정을 요청한 결과로 추정된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누가 될지 불투명한 가운데 내심 바이든의 재선을 바라면서, 그렇다고 트럼프와 척을 질 수도 없다는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정말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로비를 강화하고 있을까. 주미 일본대사관이 발라드 파트너스 등 로비 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한 점을 보면 확실히 그런 듯하다. 발라드 파트너스는 트럼프의 ‘30년지기’로 불리는 브라이언 발라드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2016년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트럼프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상의한 인물이 발라드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내부 사정에 가장 정통했던 업체 또한 발라드 파트너스라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헝가리처럼 트럼프에 ‘올인’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워싱턴에선 “일본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어느 특정 후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집중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세계일보

지난 11일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가 백악관 앞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국빈 방미 기간 중이던 12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일본 기업 공장들을 잇따라 방문했다. 도요타의 자동차 배터리 공장, 혼다의 비즈니스 제트기 공장 등이다. 이를 두고 일본 국내에선 트럼프 재집권, 이른바 ‘모시토라’ 가능성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모시는 한국어로 ‘혹시’란 뜻이다. 토라는 트럼프의 일본식 표기인 ‘토람프’의 앞 글자로, 둘을 더한 모시토라는 ‘혹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이란 의미의 신조어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런 트럼프를 향해 기시다가 ‘일본 기업들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11월 미 대선까지 7개월여 남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나라 정상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할까.

김태훈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