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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대형병원 매출 연 2조원…돈벌이 수단된 생명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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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장기화로 한계를 호소해온 의대 교수들이 주 52시간 단축 근무를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내원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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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의료 개혁’ 위한 연속 기고 ⑤



이상윤 |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의사



장기화한 전공의 파업으로 아산병원이 먼저 ‘비상 경영체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병원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과 무급휴가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 대형병원들이 이 정도 충격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취약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보건산업진흥원 2022년 보고서를 보면, 대형병원 수익률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2년 기준 의료수익(매출)이 서울아산병원은 2조원을,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1조7천억원을 훌쩍 넘었다. 빅5 병원을 일컫던 ‘1조원 클럽’을 이제 ‘2조원 클럽’이라 불러야 할 정도다. 인건비 등 지출을 빼고 남은 돈은 어떨까? 이는 대형병원들이 속한 법인의 적립금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대현 회계법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부채계상 준비금이 서울아산병원은 7269억원, 서울대병원은 7601억원, 가천대길병원은 2813억원, 인하대병원은 1111억원이었다. 곳간에 돈을 쌓아두고도 병원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한국 병원들의 대응 방식을 보면 하나의 전형이 발견된다. “고통 분담”과 “헌신”이라는 말로 예상치 못한 위기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병원 노동자들에게 전담시키는 것. 이는 지난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도 확인한 사실이다.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데도 왜 한국 병원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까? 이유는 한국 병원의 매우 낮은 회복 탄력성에 있다. 병원의 회복력은 ‘효과적인 방식으로 저항, 흡수, 수용, 적응, 변화 및 회복’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떠한 우발적 상황에서도 병원의 기능을 유지하고 취약한 인구에게 질 높고 필수적이며 중요한 서비스를 지속해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병원의 회복 탄력성이 낮은 주된 이유는 병원이 이윤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병원들의 이윤 우선 운영방식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영 형태다. 적은 인력으로 노동력을 최대로 뽑아내는 구조, 최대치로 상품을 판매하고 소진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발생, 기후재난, 금융 위기 등 예상하지 못한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 대형병원들의 고질적 병폐는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항상 인력을 부족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 경쟁적 상황 탓에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종사자들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 도입한 디지털화와 자동화 체계는 실시간 노동 감시로 이어져 의료인들의 스트레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인간의 취약성을 돌보는 병원 사업장에 도입한 효율 중심 운영방식은 의료인 간 칸막이도 강화해 환자 치료를 위한 업무를 다른 직종에 떠넘기거나 저임금 인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공의들은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과로 문제를 겪고 있으며, 항시적 인력 부족을 겪는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대리하도록 하는 문제도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소진된 의료인들이 병원에서 떠나는 이유다. 의사들이야 병원을 떠나 자신의 통제 아래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개원가로 이동할 수 있지만, 간호사들은 간호사로서의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과로 노동이 일반화하고 수익률을 경쟁적으로 따지는 의료 문화에서 환자-의료인 관계가 정의롭거나 따스할 리 없다.



의대 증원 논란으로 시작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진 이 사태 해결의 핵심은 의료를 더 이상 이윤 중심 체계에 두지 않아야 한다는 자각이다. 아픈 환자들로 연 2조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돈과 생명을 거래하는 현장을 근본부터 바꾸지 않는 한,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여 한국 병원의 고질적 병폐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윤은 자본이 가져가고 위험과 비용은 노동자와 사회에 전가하는 이 방식을 더 확고하게 만드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은 가짜다. 정부가 땜질식 처방으로 내놓은 건강보험료 수혈로 대형병원이 살아나더라도 이윤과 경쟁 체계가 운영의 원리인 한, 한국 병원의 미래는 없다. 지금이 한국 병원의 체질을 바꿀 기회다. 건물 확장이나 더 값비싼 의료비를 받기 위한 의료 장비가 아니라 인력에 투자하도록, 이윤이 아니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운영하도록 한국 병원들을 공공화하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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