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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김한수의 오마이갓]원불교 圓紀의 기준은 탄생, 죽음 아닌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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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은 원불교 최대 명절 ‘대각개교절’

조선일보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1916년을 원기의 기준으로 삼는다.


지난주엔 불기(佛紀)와 서기(西紀)의 시작 기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엔 원불교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원불교는 서기, 불기처럼 독자적으로 원기(圓紀)가 있습니다.

이 원기의 기준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깨달음입니다. 1916년 4월 28일 소태산 대종사가 큰 깨달음[大覺]을 얻은 것이 기준입니다. 원불교는 양력 4월 28일을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주 일요일이지요.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제 또래들에겐 4월 28일은 ‘충무공탄신일’과 같은 날이어서 기억하기가 쉬울 겁니다.

조선일보

원기 108년(2023년) 대각개교절을 맞아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오른쪽)와 개막식에서 인사말 하는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 /원불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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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개교절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成道齋日·음 12월 8일)과 비슷한 성격이지요. 서기(西紀)가 예수의 탄생, 불기(佛紀)는 부처님의 열반을 기준으로 삼는 것에 비해 원불교는 ‘깨달음’이 기준인 것이지요. 불교, 그리스도교에 비해 2000년 이상 뒤에 탄생한 종교인만큼 다른 종교처럼 창시자의 탄생이나 죽음을 기준으로 삼을 법도 한데 원불교는 ‘깨달음’이라는 다른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원불교는 초기엔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1948년 원불교로 이름을 바꾸고 연호를 ‘원기(圓紀)’로 바꾸기 전까지는 ‘시창(始創)’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면서 대각을 얻은 1916년을 원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4월부터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월일은 서기를 사용하고 해[年]만 1916년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1916년이 ‘원기 1년’이었고, 올해 2024년은 원기 109년입니다.

최근 ‘종교문해력 총서’(전5권·불광출판사)라는 시리즈가 출간됐습니다. 불교, 그리스도교, 원불교, 이슬람에 대해 전문가들이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쓴 책들입니다. 원불교에 관해서는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이란 제목으로 장진영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장이 집필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원불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습니다.

2000살 이상된 종교들의 틈에서 이제 100살이 갓 넘은 원불교는 ‘새내기’이지요. 그래서인지 원불교는 기성 종교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가 개교한 이듬해부터 ‘조합’을 만듭니다. 금주, 금연 등으로 돈을 모아 제방을 쌓고 농지를 만드는 ‘저축조합’ ‘방언(防堰)조합’을 만들었지요. ‘숯장사’도 했습니다. 종교 공동체이면서 경제 공동체로서 시주나 구걸이 아니라 ‘사업’으로 자립하는 길을 택한 것이지요.

‘소태산이...’ 책엔 소태산의 어록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중엔 ‘미래의 불교’에 대한 언급도 있지요. 소태산은 미래의 불교는 ‘직업을 버리지 않고, 재가와 출가의 차별이 없고, 일과 공부가 둘이 아니고, 불공의 처소와 대상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도량(교당)은 신자의 집중지 즉 도심에 두고, 경전은 평이한 문자와 통속어로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걸식과 시주는 폐지하고 옛날식 의식과 예법을 현대화하라고도 했지요.

의식과 예법의 현대화를 위해 1930년대엔 ‘사기념례(四紀念禮)’라는 규정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생일, 명절, 선조기념일, 환세기념일 등 4가지 기념일을 원불교 교도들이 공동으로 통일하자는 것이죠. 각자의 제사, 생일 다 챙기지 말고 함께 기념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당시의 기념일이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원불교는 지금도 대각개교절, 석존성탄절(음 4월 8일), 신정절, 법인절(8월 21일)을 4대 경축일로 기리고 있습니다. 원불교 교도들은 대각개교절을 공동의 생일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혁신적으로 종교의 현대화·대중화에 앞장섰다는 의미에서 ‘조선불교사상의 루터’(1937년 조선일보)라는 평가도 받았지요.

19세기말~20세기초 한국에도 많은 종교가 명멸했습니다. 경쟁도 치열했고 이단·사이비의 옥석을 가리는 과정도 있었지요. 원불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그 치열한 경쟁과 현대사의 질곡을 헤치고 살아남아 현재 한국의 4대 종교로 발돋움했습니다. 역대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 대표와 함께 추모사를 하고, 군종장교도 배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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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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