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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광화문·뷰] 피고인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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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국 총선 압승했으나 사법 리스크 그대로 남아

일각선 ‘재판 흔들기’ 우려… 그 前兆 벌써 나타나

이번 총선의 방송사 출구 조사 중에는 ‘국민의힘 최대 99석’으로 예측한 것도 있었다. 범(汎)야권 의석이 200석을 넘기면 개헌 및 대통령 탄핵의 저지선이 무너지고,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도 무력화된다. 야권이 원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른바 ‘민주적 통제’가 ‘사법권 독립’보다 우위에 있도록 제도화하면서 검찰청을 공소 유지만 하는 공소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야권의 총선 구호 중 하나였다.

법조인 중에선 “대통령 거부권이 무용지물이 되면 야권 정치인들을 기소했던 근거 법 조항을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람도 있다. 실제 작년에 한 민주당 의원은 허위 사실 공표 혐의가 적용되는 대상을 축소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이 처리됐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같은 경우, 면소(免訴) 판결이 내려진다.

국민의힘이 108석이나마 확보해 그런 상황은 오지 않게 됐다. 하지만 지금 사법부에서는 앞으로 거대 야당의 엄청난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 있다. 이재명 대표가 재판을 받는 3건 중 선거법 위반과 위증 교사 사건은 올해 내에 1심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2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및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도 연내 대법원 선고가 예상된다. 한 법관은 “지금 이재명·조국 대표에게 남은 장애물은 사법 리스크뿐”이라면서 “그 진영에서 끊임없이 법원을 흔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미 그런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대장동 변호사’들이 민주당 후보로 여러 명 당선됐다. 그중 한 명은 최근 유튜브 방송에 나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장동 사건’ 재판부가 총선 기간에도 이재명 대표가 재판에 출석하라고 한 것을 두고 했던 말이다. 사법부 전체에 대한 ‘협박’으로 비칠 발언이었다. 앞으로 22대 국회의 법사위원회는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주도할 공산이 크다. ‘대장동 변호사’ 말고도 각종 사건의 피고인·피의자 당선자들이 법사위원으로 거론된다. 이해 충돌에 대한 고려가 안중에 있겠나 싶다.

법정에 나온 피고인들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 김용씨는 대장동 업자에게 6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최근 2심 첫 재판에서 보인 행동이 법조계에서 회자하고 있다. 그는 검찰 비난에 목소리를 높이다 제지를 받았다. 직접 증인 신문에 나선 김씨는 재판부가 “세 개만 물어보라”고 했는데 “다섯 개 묻겠다”며 질문을 계속했다. 급기야 재판부가 “재판 진행을 방해 말라”고 경고했다.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이화영씨가 1심 선고를 앞두고 ‘검찰청 술자리 회유’ 주장을 하는 것도 흥미롭다. 검찰청 조사실 술자리에서 회유를 받고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게 쌍방울의 방북 비용 대납을 보고했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도 공세를 펼치고 있다.

쌍방울의 800만달러 불법 대북 송금은 ‘팩트’다. 이씨는 이 과정에 관여한 혐의, 쌍방울에서 수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있다. 국정원과 경기도 문건, 쌍방울 전 회장과 대북 교류 단체 회장의 진술, 계좌 추적 자료 등이 혐의를 뒷받침한다고 한다. 법조인들은 “’술자리 회유’ 주장이 이씨에 대한 1심 판단에 영향을 미치긴 어려운 구조”라며 “이재명 대표 보호 목적이 더 강해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대장동·쌍방울 재판을 주시 중인 야권이 두 사건 재판부를 벼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법이 정치에 휘둘리는 ‘피고인들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인가.

[최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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