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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300 대 0’의 의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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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녹색정의당 지도부가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노회찬 의원 묘역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녹색정의당은 4·10 총선에서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석을 얻지 못해 창당 12년 만에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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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22대 총선 이튿날 새벽, 누군가 이렇게 적었다. “한국 정치가 다시 300 대 0으로 돌아갔다.” 거대 양당과 그 위성정당의 셈법에만 익숙한 이에겐 생뚱맞은 숫자일 게다. 그러나 한때 진보정당의 대의에 동참했던 이들에겐 참으로 사무치는 숫자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10명의 당원을 국회로 보낸 지 정확히 20년 만에, 진보좌파의 자리는 국회에서 사라졌다. 그 의미와 과제를 짚어야 할 시점이다.



혹자는 ‘22대 국회에 진보정당이 사라졌다’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이 엄연히 22대 국회에 있는데 왜 진보좌파가 0이라고 주장하느냐”라는 반박이다. 답은 명확하다. 진보를 참칭하면서, 보수 기득권이 주도한 위성정당이라는 ‘시스템 해킹’에 적극 가담한 행위는 평등·해방의 가치는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작태다. ‘300 대 0’은, ‘기생적 진보정당’이 아닌 ‘독자적 진보정당’이 의회에서 사라진 현실을 가리킨다.



총선에 나온 독자적 진보정당은 하나가 아니었지만, 원내 정당에서 원외 정당이 된 녹색정의당이 아무래도 입길에 많이 올랐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들을 향한 ‘진단’과 ‘훈수’가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평가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페미니즘에 ‘올인’해서 망했다”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가치를 내세웠지만 선명하지 못해서 졌다”이다. 전자는 집중해서 망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집중하지 않아서 망했다는 것이니 형식논리상 둘은 양립 불가능하다.



“페미니즘에 열중하다 망했다”는 주장은 정의당 국회의원들, 특히 젊은 여성 의원 류호정과 장혜영이 민생과 노동 의제를 외면했다는 데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6인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을 실제로 살펴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강남규, ‘정의당이 ‘노회찬 정신’ 실종?’, 경향신문) 2024년 시점에서 봐도 류호정은 대표발의 61건 중 페미니즘 관련은 3건으로 5%, 장혜영은 차별금지법을 포함해도 42건 중 6건으로 14%에 불과하다. 도리어 이쯤 되면 페미니즘에 소홀한 걸 지적해야 할 지경이다.



그럼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다 선명성을 잃어서 몰락했다’는 평가는 어떨까? 이는 적지 않은 정치 전문가들과 일부 정의당 출신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불평등, 기후, 여성, 장애인까지, 포기하기 어려운 의제들을 모두 붙잡고 가느라 선택과 집중을 못 하게 됐고, 기존 지지자들조차 다른 당에 모두 뺏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보다는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다양한 정도를 넘어 심지어 상충하는 의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다는 점, 노동당과 녹색당은 정의당보다 훨씬 선명함에도 현실정치에서 정의당보다 존재감이 없다는 점을 같이 언급해야 공정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의당 패배 요인을 가치의 다양성에 돌리는 분석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는 선명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조차 생태주의로 재해석되는 시대다. 현대 진보정치에서 가치의 다양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실 정의당의 몰락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따지고 보면 조국 사태 같은 국면에서 당 지도부의 오판도 중대한 이유였다.



다른 선거처럼 이번 총선도 ‘르상티망’(원한감정)이 주도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잘못되는 데서 정치 효능감이 극대화된다. 누군가가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은 더 좋은 정치가 아니라 그를 가장 아프게 찌를 칼에 투표한다. 그래서 힘없는 세력은 너무 쉽게 사표론의 먹이가 된다. 억울하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진보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말해야 한다. 싫은 놈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는 정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던 사회의 상처를 가시화하고 치유하는 정치를 제안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두고 많은 이들이 노회찬과 심상정으로 대표되던 진보정당 시대의 종결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정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는 민중의 대변이 아니라 차라리 민중의 발명이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가치를 의제로 만들어내는 열정은 어느 시대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끝내 정치적 주체로 결집시킨다. 결국 그것이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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