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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유럽에 ‘폭탄선언’ 다이아몬드 대국…민주주의로 ‘자원의 덫’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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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츠와나 가보로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0㎞ 떨어진 곳에 있는 즈와넹 광산의 노천 광구.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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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동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가 독일에 “코끼리 2만마리를 보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독일 환경부가 밀렵을 걱정하며 사냥동물 수입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보츠와나의 모크위치 마시시 대통령이 코끼리 떼를 독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지난달 영국이 야생동물 사냥을 제한하겠다고 했을 때도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장관은 “코끼리 1만마리를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보내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대로 당신들도 동물들과 함께 살아보라. 농담하는 것 아니다.” 마시시 대통령은 독일 신문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코끼리를 신경 쓰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영국이 사냥동물 수입 금지를 주장했을 때 보츠와나 언론이 “식민주의의 그릇된 리바이벌”이라고 비판한 것과도 맥이 통한다.



코끼리를 보호하려고 밀렵과 상아 거래를 막으며 국제사회가 애를 써왔지만 지금 보츠와나의 사정은 좀 다르다. 코끼리가 13만마리가 넘는데 매년 6천마리씩 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야생동물 사냥을 불법화했다가, 여론에 밀려 2019년에 금지를 풀었다.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이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빈국’이고 관광객들 돈으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본다면 편견이다. 보츠와나가 2021년 코끼리 사냥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270만달러(약 37억원)였다. 그리 엄청난 액수는 아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코끼리가 너무 많아져서 농작물과 마을을 파괴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에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영국의 해리 왕자 부부가 후원하는 보츠와나 환경단체 ‘국경 없는 코끼리’도 “이 많은 개체 수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웹사이트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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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4배 ‘코끼리 천국’





보츠와나는 우리에겐 좀 생소한 나라다. 분쟁이나 재난 같은 것으로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나라,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고성장을 구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면적은 58만㎢, 인구는 260만명 정도다. 인도의 코끼리 수가 3만5천마리라는데 보츠와나는 13만마리라니, 인구 대비 코끼리 마릿수로는 따라갈 곳이 없겠다. 북부 칼라하리 사막의 오카방고 삼각주는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이름 높다.



개발원조 분야에서 보츠와나는 ‘스타’다. 영국의 간접 통치에서 벗어나 1966년 국가를 세웠는데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정말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다론 아제모을루(대런 애스모글루) 등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보츠와나 공화국이 만들어졌을 때 “포장도로는 모두 합쳐봐야 12㎞, 대학 졸업장이 있는 시민은 22명, 중등교육을 받은 시민이라고 해봐야 100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2021년 기준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만5천달러로, 세계의 나라들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가운데에 위치하는 나라가 됐다. 한동안 한국 등 ‘아시아 호랑이’들을 분석하던 개발경제학자들은 2000년대 이후로는 보츠와나를 모델로 삼고 있다. 정부 재정도 탄탄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늘 평가받는다.



이 나라의 성공 요인을 알려면 역사를 봐야 한다. 19세기 말 아프리카 남부를 제 땅처럼 지배하던 영국의 악명 높은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는 베추아날란드, 즉 오늘날의 보츠와나도 자기 밑에 두고 싶어 했다. 1895년 그 지역에 살던 츠와나 부족장 3명이 여객선을 타고 머나먼 길을 여행해 영국으로 가서 총리와 담판을 지었다. 로즈와 정치적으로 라이벌이었던 영국 총리는 츠와나 부족이 로즈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영국의 간접 통치 아래 자치를 누리게 해줬다.



츠와나 부족은 일종의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집단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갖고 있었고, 부족장 자리는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열려 있었다. 부족의 뜻을 모아 입장을 정리해서 영국에 대표단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보츠와나는 독립 뒤에도 민주주의를 지켰다. 보츠와나민주당(BDP)이 계속 집권하고 있긴 하지만 군부 장기집권 같은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한 정당이 오래도록 권력을 이어가는 일본과 비슷한 구조다. 정부가 안정돼 있고, 행정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거의 보편적인 무상 초등교육을 하고 있다. 이제 2036년까지 고소득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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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통제량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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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코 모아기 보츠와나 광물에너지부 장관이 지난해 7월 다이아몬드 거래 통제량을 늘리게 된, 드비어스와의 새로운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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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원이 큰 몫을 했다.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자원이 있어도 발전은커녕 독재체제의 발판이 되거나 분란이 일어나는 나라가 적지 않다. 보츠와나가 이른바 ‘자원의 덫’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 민주적 전통이 있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문제가 없지는 않다. 다이아몬드가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재정 수입도 거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영국 광업회사 드비어스의 권력이 너무 세다. 세실 로즈가 창립한 바로 그 드비어스와 보츠와나 정부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진 ‘뎁스와나’라는 회사가 다이아몬드의 3분의 2를 생산하지만, 드비어스가 거래의 90%를 통제한다. 전체 원석 수출량의 10%만 보츠와나 쪽이 자체적으로 거래할 수 있게 계약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협상에 나선 보츠와나 정부는 자신들의 통제량을 10년 동안 50%로 올리기로 작년에 합의했다.



보츠와나가 드비어스와 경쟁하는 벨기에 보석회사를 끌어들여 영리하게 협상을 하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나온 보석을 가리키던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딱지가 러시아산에도 붙게 됐다.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의 표현을 빌리면 구매업자들이 다이아몬드를 살 때 “송장에 러시아산이 아님을 명시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덕에 2020년 40억달러였던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 수출액은 2021년 69억달러, 2022년 74억달러로 늘었다. 작년에는 세계의 수요가 줄면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보츠와나의 관심은 당장의 매출보다는 채굴권의 회수 쪽에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 전반의 흐름이기도 하다. 짐바브웨는 작년에 리튬 수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원광 수출보다 자국 내 가공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코발트 수출을 둘러싼 서방과의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드비어스와 협력해온 나미비아도 다이아몬드 거래에서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하며 보츠와나의 모델을 따르려 하고 있다.



독립 이후 6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보츠와나는 열심히 뛰었고 앞날도 현재로선 밝아 보인다. 코끼리와 다이아몬드 사이, 보츠와나의 걸음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희망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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