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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비주류가 주인공이 된 비엔날레… 마오리족 여성작가팀이 황금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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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주제로 베네치아에 작가 330명 초청

조선일보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를 지닌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은 섹션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에 월전 장우성의 ‘화실’과 이쾌대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 나란히 걸렸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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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

세계 최고·최대 미술 축제, 베네치아 비엔날레 129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방인’이 전면에 부각됐다. 20일 공식 개막한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서구 중심 미술사에서 소외돼온 작가들이 주인공이었다. 본전시 예술감독을 맡은 브라질 출신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외국인·이민자·망명자·난민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며 “이방인의 의미를 확장해 성 정체성으로 박해받는 퀴어 예술가, 독학으로 시작한 작가, 땅의 주인임에도 외국인처럼 소외받는 원주민 예술가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19세기 조선소를 개조한 아르세날레 전시장 입구엔 전시 주제인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란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걸렸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의 대형 섬유 설치 작품이 관객을 맞았다. 마오리족의 전통 직조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20일 발표된 본전시 황금사자상에 호명됐다. “자궁 같은 요람의 직물은 모계 전통과 관련 있고, 벽과 바닥에 드러워진 그림자의 패턴은 조상들의 기술과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호주관이 차지했다. 호주 원주민 예술가 아키 무어가 전시장 벽면을 칠판으로 꾸며 호주 원주민의 6만5000년 역사를 분필로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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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예술감독을 맡은 브라질 출신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자르디니 중앙관 앞에 서 있다. 자르디니 중앙관 외벽은 브라질 작가 그룹 마쿠가 페루와 브라질 국경 지역의 신화를 소재로 그린 화려한 색색 벽화로 장식됐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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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시에 참가한 전 세계 330명 작가 중 3분의 1이 남미 출신이었다. 자르디니 중앙관 외벽은 브라질 작가 그룹 마쿠가 페루와 브라질 국경 지역의 신화를 소재로 그린 화려한 색색 벽화로 장식됐다. 서구 작가가 4분의 1로 줄어든 반면, 중동·북아프리카 출신 작가 비율은 2022년 5%에서 17%로 크게 늘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들을 대거 소개한 것도 올해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특히 월전 장우성(1912~2005)과 이쾌대(1913~1965)가 ‘초상화’ 섹션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장우성의 ‘화실’(1943)과 이쾌대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은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해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를 지닌 아시아·아프리카·중동·남미 출신 작가들의 초상화와 함께 나란히 걸렸다. 장우성 그림 옆에는 미국 큐레이터 버지니아 문이 “일본 이름을 쓰도록 강요받던 식민지 시대에 작가는 흰 한복을 입은 여성을 그렸고, 배경을 여백으로 남긴 점도 조선 수묵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쓴 설명이 붙었다.

현장 곳곳에서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가관들이 들어선 자르디니 공원 안팎에선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비바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 만세)”을 외쳤다. 이스라엘관은 입구에 “이슬라엘관 작가와 큐레이터는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지면 전시관을 열겠다”는 안내문을 붙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러시아 국가관은 2022년에 이어 올해도 참여하지 않고 국가관을 대신 볼리비아에 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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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의 삶과 역사를 다뤄온 이강승 작가의 작품이 자르디니 전시장에 비중 있게 소개됐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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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올해 본전시에 역대 최대 규모로 참여했다. 구순을 앞두고 전성기를 맞은 조각가 김윤신과 성 소수자의 삶과 역사를 다뤄온 이강승은 자르디니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비중 있게 작품이 소개됐다. 영상 아카이브 프로젝트 ‘불복종 아카이브’에선 한국 작가 듀오 ‘믹스라이스’가 이주 노동자의 삶을 그린 영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1월 24일까지. 성인 기준 25.5유로(약 3만7000원).

[베네치아=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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