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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호스트바 가려고 14억원 사취한 日소녀의 최후 [방구석 도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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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화제였던 ‘마법소녀’ 실형 판결

가정폭력으로 호스트바 중독됐었다 고백

”그는 내 구원이었다… 나도 누군가에 도움되고 싶었다”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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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2일 일본 나고야지법에서 사기 등 혐의로 징역 9년, 벌금 800만엔(약 7100만원)을 선고받은 와타나베 마이. 그는 호스트바에 가기 위해 데이트 매칭앱 등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돈을 사취했다고 진술했다./유튜브


“피고는 피해자인 남성들의 심리를 거짓으로 속여 그들의 호의를 악용한 실히 교활한 범행을 저질렀다. 피고에게 징역 9년과 벌금 800만엔(약 7100만원)의 판결을 선고한다.”

22일 오후 2시 일본 나고야지방법원은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 와타나베 마이(25)에게 이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TBS·TV아사히·니혼테레비 등 현지 언론은 일제히 “‘이타다키조시(받아먹는 여자) 리리짱’에 징역 9년, 벌금 800만엔 판결”이라는 속보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날 판사가 판결과 함께 재판봉을 내려치려 하자, 와타나베가 갑자기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잠시 의식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의식을 되찾기까지 약 4분 동안 재판이 중단됐습니다.

조선일보

남성들을 속여 한화로 14억원에 달하는 돈을 사취한 일본 여성 와타나베 마이에 대한 판결을 방청하기 위해 22일 나고야지법 앞에 모인 시민들. 법정 방청석은 81석인데 313명이 몰렸다./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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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고야지법엔 와타나베에 대한 판결을 방청하려는 313명의 시민이 몰렸습니다. 법정 방청석은 81석에 불과해 230여 명은 바깥에서 스마트폰으로 관련 속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죠. 피고 와타나베의 별칭인 ‘이타다키조시(頂き女子·받아먹는 여자)’는 지난해 일본 출판사가 선정한 ‘올해의 유행어’ 후보에 오를 만큼 화제였습니다.

와타나베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관심을 독차지하고 실형에까지 처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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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다키조시’ 와타나베에 대한 방구석 도쿄통신 레터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작년부터 일본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에 대한 판결이 이번에 나왔고, 또 과거 밝혀지지 않았던 와타나베의 소상한 범행 동기가 공개돼 새로운 뉴스로 다시 쓰게 됐습니다. 이전 레터를 읽지 않으셨더라도 이번 레터를 읽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 이전 레터를 읽으신 분이라면 다소 겹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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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 유튜브에 출연한 '이타다키조시(頂き女子·받아먹는 여자)'. 2000만엔(약 1억8200만원) 이상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이타다키조시는 소개팅 매칭앱 등에서 중장년 남성을 만나 연애하는 것처럼 속이고 돈을 사취하는 10~20대 젊은 여성을 말한다./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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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데이트 매칭앱에서 만난 남성 등 3명에게 ‘부모님과 싸워서 독립해야 한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등의 거짓말로 최소 1억5500만엔(약 14억원)을 사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와타나베가 유명해진 것은 이보다 일찍인 2020년 무렵부터인데요. 그는 당시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이타다키조시 리리짱’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했습니다. 매칭앱에서 만난 남성에게 호감을 얻고, 이들에게 거짓말을 해 거액을 뜯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한 이른바 ‘리리짱 마법 완전 공략 매뉴얼’이란 책을 또래 여성들에게 1만엔씩에 판매했죠.

현지 언론들이 보도한 와타나베의 ‘매뉴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책 이름처럼 ‘마법’을 걸 듯, 아예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 상대를 속이라고 구매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예컨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을 연기하면 손쉽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는 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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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마이가 판매했던 이타다키조시 매뉴얼 목차. '초보자도 알 수 있는 마법의 기본', '리리짱 완벽 색사 강좌', '금액 정하는 법' 등으로 나뉘어 있다./슈칸분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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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재촉하는 등 의심을 살 수 있는 연락은 삼가고, “어떡하면 좋지, 너무 괴로워”라고 해 역으로 “무슨 일 있느냐”는 질문을 유도하란 치밀한 수법까지 안내했습니다. 총 세 권에 걸친 매뉴얼 외에도 추가로 1만엔을 내면 다른 매뉴얼 구매자들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단체 메신저 채팅방에 초대해줬습니다. 2020년에만 해당 채팅방에 300명 이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와타나베의 소셜미디어 활동 기간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실제 혐의는 수사된 것보다 훨씬 무거울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22일 그에게 내려진 법원 판결이 가볍다는 비판도 이 때문이죠. 일본 이바라키현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그(와타나베)와 결혼까지 약속했고 생명보험까지 해지해 3850만엔에 달하는 돈을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둘이 알게 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하죠. 남성은 “빙수를 나눠 먹고, 드라이브도 함께하고, 공원에서 손잡고 데이트도 했다”며 “시간이 지나니 열악한 가정환경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하더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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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사기 등 혐의로 일본 나고야지법에서 실형을 받은 와타나베 마이에게 과거 거액의 돈을 사취당한 50대 남성이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는 정말 (와타나베와) 사귀고 있다고 생각해 즐거웠다"고 하고 있다./나고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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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지난해 8월 그의 매뉴얼을 구매한 나고야의 한 20대 여성이 피해 남성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사기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지역 경찰에 사기 방조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이후 수사를 통해 그의 직접적인 사기 혐의까지 드러나 이날 판결에 이르게 됐죠.

와타나베는 재판이 열리기 전 경·검찰 조사에서 “2018년부터 호스트바에 다녔다”며 “지명한 호스트에게 하루 수백만~수천만엔을 쏟아붓느라 돈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호스트바는 여성 손님이 남성 접객원을 지명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유흥주점입니다. 이러한 호스트바에 중독되면서 중장년 남성들을 등쳐먹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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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일본 나고야지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타다키조시' 와타나베 마이가 법정에 앉아있는 모습 스케치. 그는 그간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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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FNN·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과의 구치소 면회에서 “어린 시절 부모가 내 머리채를 잡고 칼을 들이미는 등 괴로운 나날을 겪었다. 주변 또래에겐 따돌림을 당해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며 “그러던 중 20세 때 만난 호스트가 나를 웃게 해 줬다. 삶의 의미를 되찾고 구원받은 느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호스트바에 낼 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계기로 (범행을) 시작했다”고 했죠.

와타나베는 그간의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는 호스트바에 방문할 때마다 최대 2700만엔, 월평균으론 400만엔가량을 지불해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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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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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서른다섯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이타다키조시’ ‘마법소녀’ 등으로 알려져 지난해부터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군 와타나베 마이에게 내려진 법원 판결과 그의 범행 동기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3~34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아이스크림 먹으려 日고교생들이 벌인일… “어른보다 낫네” 말나온 이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4/10/WVX3YDCJGJCMVNTX7T2G4YON7Q/

“가격 올리느니 문 닫겠다”… 매일 아침 줄서던 빵집의 사연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4/17/C3W644XBTZGTBDUD6EKUJYRSOM/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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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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