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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리딩방 사기피해, 코인으로 보상”… 두번 울리는 MZ 피싱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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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80명에 54억 뜯은 37명 검거

“피해자, 가짜 전자지갑 믿고 입금… 증권사 직원 위장, 추가송금 유도”

“MZ 신종사기 유행처럼 번져” 우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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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억 뜯어낸 MZ 피싱 조직

코인 사기로 54억 원을 뜯어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피싱 조직 37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투자 리딩방’이나 ‘로또 당첨번호 분석업체’ 등에서 이미 한 차례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피해를 보상해줄 테니 폭등이 예상되는 코인에 헐값에 투자하라고 속인 것. 쓰린 속을 위로하면서 추가 입금을 유도하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피해자가 80명이 넘었다.》

“안녕하세요, 로또 분석업체 가입비 환불해 드리려고 연락했어요.”

수화기 너머 남성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지난해 6월 주부 김선미(가명·41) 씨는 모처럼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몇 달 전 ‘로또 당첨번호를 예측해 주겠다’는 한 업체의 꼬드김에 넘어가 35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당첨번호는 맞지 않았다. ‘사기를 당했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최소 4배로 폭등할 가상화폐(코인)를 살 기회를 주겠다는 전화였다. 상담원이 쓰린 속을 다 안다는 듯 “앞으로 로또 번호는 그냥 ‘자동 선택’으로 고르시는 게 나아요”라고 위로하자 김 씨는 그를 완전히 믿게 됐다. 그리고 상담원이 알려준 계좌로 돈을 보낸 뒤에야 깨달았다. 또 당했다는 사실을.

● 증권사 사칭한 ‘바람잡이’가 거액 투자 유도

김 씨처럼 로또 분석업체나 투자 리딩방에서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코인 사기를 벌인 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23일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서울과 인천 일대에 콜센터를 차리고 2022년 11월부터 이달 초까지 80여 명으로부터 54억 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범죄단체조직 등)로 37명을 검거하고 그중 총책 A 씨(33) 등 1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조직 내에서 ‘본사’라고 불린 B 씨(25)로부터 ‘사기 목표’의 정보를 넘겨받았다. B 씨가 투자 리딩방 등에 유료로 가입했던 피해자의 이름과 연락처, 결제 금액 등을 넘기면 이를 조직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조직원은 코인 발행업체 상담원을 가장해 ‘로또 분석업체 등을 인수했는데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신고가 너무 많이 접수돼서 보상 방식을 대신 상담하고 있다’는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가 가짜 전자지갑에 기록된 입금 내역을 믿고 소액을 입금하면 증권사 직원으로 속인 다른 조직원은 재차 피해자에게 접근해 추가 송금을 유도했다. “우리도 못 구한 코인을 어떻게 구했느냐. 대량으로 매입해 줄 테니 최대한 많이 사들여라”라며 바람을 잡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5억3000만 원을 뜯긴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가 의심하면 즉시 잠적하고 지역을 옮기며 범행을 이어갔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일부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다. 올 1월부터 이달 초까지 콜센터 4곳을 덮쳐 A 씨 등 일당을 붙잡고 현장에서 고가 시계 등 18억 원어치의 금품을 압수했다. 경찰은 B 씨가 리딩방 등 피해자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수사 중이다.

● 중고차 사기 MZ 일당, 코인 사기로 업종 바꿔

A 씨 일당 37명은 모두 20, 30대였다. 특히 그중 12명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중고차 판매 사기를 벌이다 벌금형이나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업종을 코인과 리딩방 등 신종 경제사기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범죄조직 사이에서 코인, 리딩방 등 신종 지능범죄가 추세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달 3일 강원 지역에선 투자 리딩방을 이용해 사기를 벌이던 20, 30대 일당 3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청 형사기동대 심무송 피싱범죄수사계장은 “코인, 투자 리딩방 관련 범죄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덜한 점을 이용해 MZ 범죄조직이 한꺼번에 많은 피해자를 속일 수 있는 코인 사기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채팅방 등에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를 유치하는 행위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감독원에 정식 투자자문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채팅방 등 양방향 채널에서 투자 영업을 할 수 없다. 정식 업체는 금감원 정보포털(fine.fs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투자 리딩방에서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일단 불법이라고 의심하는 게 현명하다”고 경고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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