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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고금리-경기침체에… 개인회생 두달새 2만2167건 역대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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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상환 길 막혀 생활 불가능

‘경제 허리’ 30∼40대가 59% 달해

채무조정 신청도 19년만에 최다

전문가 “선별적 구제 대책 필요”

부산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27)는 지난해에만 서민금융과 캐피털 등에서 약 4000만 원을 빚졌다. 그는 연봉 3000만 원으로 간신히 대출 이자를 감당해 왔다. 하지만 카드값 600만 원과 통신요금 150만 원이 연체되는 등 생활고에 시달렸고, 곧 만기 도래하는 대출 원금은 도저히 갚을 자신이 없었다. 이 씨는 “집안 사정 때문에 사회 초년생 때부터 빚을 지게 됐다”며 “현재 자금 사정으로는 원금 상환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 부산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기 침체마저 깊어지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대출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건수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보다 17%나 늘었고,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의 채무조정 접수 건수 역시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 올해 개인회생 신청 또 역대 최대 경신할 듯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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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2만2167건으로 집계됐다. 200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동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기존 최대치였던 지난해 1∼2월(1만8954건)과 비교해도 17% 더 많다.

개인회생은 소득으로 일정 기간 빚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 채무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자력으로 빚을 갚을 수 없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특히 우리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30, 40대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어려움이 크다.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2023년도 개인회생 사건 통계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30, 40대의 개인회생절차 신청 비율이 전체의 58.9%를 차지했고,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 등 경제 활동 영역이 확대된 20대의 개인회생 신청 비율(16.9%)도 전년(15.2%) 대비 늘었다”고 설명했다.

● 사적 채무조정도 급증, “선별 구제 나서야”

법원에서 공적 채무조정에 나서는 이들뿐만 아니라 신복위의 사적 조정제도를 활용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 1000만 원을 받은 30대 김모 씨는 다니던 회사의 경영 악화로 급여가 밀리면서 신용대출 이자마저 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김 씨는 결국 신복위를 찾아 신속 채무조정을 신청해 3년의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받았다.

국회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들어 2월까지 신복위에 채무조정(개인워크아웃, 신속채무조정, 사전채무조정 합산)을 신청한 건수는 3만2616건으로 나타났다. 2005년 동기(3만4635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법원의 개인회생은 사적으로 빌린 돈 등 채무 전체가 대상이다. 반면 신복위 채무조정은 금융권 채무만 조정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별로 다르지만 상환 유예나 연체 이자 조정, 원금 탕감 등을 받을 수 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와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빚을 갚지 못하는 차주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의 자금 공급에 한계가 분명한 만큼 지원 기준을 더 명확히 해서 선별적인 구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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