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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승만은 끝까지 책임을 전가하며 권력을 지키려 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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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60년 ‘4·18 고대생 습격사건’ 이후 십대 중학생들까지 뛰쳐나와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라’고 외칠 정도로 민심이 돌아서자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4월26일 담화 뒤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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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4·19혁명’ 연속 기고 ③



오수창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4・19혁명으로 국민의 뜻이 확인되자 이승만은 4월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으며 ‘책임을 지고’ 또는 ‘학생들 주장이 옳다 하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설명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연 그랬던가? 그 담화에서 이승만은 더 이상 국민의 뜻을 확인할 여지가 없는데도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마지막 문장은 “만일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 책임제 개헌을 하겠다”였다. 사임의 조건을 걸고 개헌 의지를 밝힌 담화를 물러나겠다는 성명으로 읽을 수는 없다.



그날 오후 국회에서 이승만의 담화가 무슨 뜻인지 논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 허정 외무부 장관이 문구상의 표현일 뿐 사실상 하야라고 전했지만, 그것이 이승만의 진의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결국 국회는 만장일치로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하야할 것”을 결의했다. 오전의 담화를 사임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다음날 이승만은 국회에 “나 리승만은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대통령의 직을 사임”한다는 사임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직 사임이 국회의 결의로 인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이승만의 4월26일 담화가 ‘하야 성명’이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담화에 앞서 이승만을 면담한 시민・학생 대표, 그리고 계엄사령부까지 그의 ‘하야’를 발표하여 사임을 기정사실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이 4월19일 항쟁은 물론 25일 대학 교수단 시위 후 마지막 순간까지 대통령 지위를 지키려 했던 사실은 국민의 항거가 시작된 후 추이를 살펴보면 그 본모습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은 앞서 3월15일 마산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9명의 사망자와 80여명의 중상자가 발생한 후 19일 발표한 담화에서 “시골 몇 곳에서 다소 난동”이 있었다고 하면서, 살상자가 나온 데 대해 국민의 깊은 반성을 요구하고 범법자들을 법대로 다스리겠다고 했다. 그 전날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이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라고 한 발언과 정확히 조응했다. 이승만이 국민 항쟁을 ‘난동’으로 지칭한 담화는 4·19 다음날에도 여전했다.



이승만이 국민에 대한 협박과 함께 택한 방법은 책임 전가였다. 4월13일 담화에서 ‘혼란’의 원인을 한국의 정당정치에 돌린 데 이어, 24일에는 정당정치를 길게 개탄하는 담화를 내고 정당 활동과의 절연을 선언했다. 이때 국무위원들의 책임을 언급하며 사표를 받았다. 이승만은 3・15부정선거나 시민 살상에 대한 자기 책임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4월23일 이승만이 부상당한 학생들을 문병하며 ‘울먹거리는 장면’에 감동하지만, 부상자들의 고통을 자기 책임으로 여기지 않은 이승만으로서는 그보다 더한 감정 표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승만의 책임 전가는 그의 제왕적 자세와 표리를 이룬다. 3·15 이후 파국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바이다” “국민들의 신망을 받는 정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니”와 같이 자신의 감정과 훈시·당위로 담화를 채웠다. 시민・학생과의 면담에서 사퇴를 직접 요구받았는데도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라고 하여 국민과의 대면 소통을 부정했다. 그의 담화는 왕조시대 군주의 윤음(임금이 신하·백성에게 내리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는 국민을 총으로 대거 살상했는데도, 이승만은 국민 앞에 자기 책임과 잘못을 언급한 적도 없고 사과한 적도 없다. 제왕적 지위에서 국민에 대한 협박과 책임 전가로 일관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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