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이슈 세계 금리 흐름

[홍장원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인플레 지속에 사라져버린 금리 인하 기대, 안전자산 선호 심화로 달러강세 지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4월 14일 일시적으로 1400원을 찍었다. 원화값이 1400원대에 들어선 것은 지난 2022년 11월 7일 이후 약 17개월 만이다.

이번 환율 급등은 근본적으로 미국 금리 인하 예상이 늦어지고 이스라엘-이란 사태로 인해 국제정세가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환율의 습격’을 받은 나라가 비단 한국뿐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뜨겁게 질주하는 미국의 경제가 달러를 더 비싸게 만든 데다, 중동 사태로 글로벌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가뜩이나 비싼 달러값을 한 단계 더 올라가게 만든 것이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했음에도 엔달러 환율은 연일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90년 6월 이후 무려 34년여 만에 154엔을 넘어선 바 있다. 말레이시아 링깃 가치는 1998년 이후 26년 만의 최저치를 찍었고 인도네시아 루피아 환율 역시 2020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만6000루피를 넘었다. 인도 루피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바 있다. 글로번 전역이 달러값 상승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은 그만큼 달러가 ‘나홀로 질주’를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금리 인하 시기가 계속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환율을 움직이는 가장 큰 변수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은 미국이 올해 최대 7번의 금리 인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은 “물가가 2%까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금리를 인하하면 너무 늦다. 정책을 실행하고 효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시장은 이를 미국 연준의 적극적인 금리 인하 의지라 상황을 오판했고, 향후 미국 물가 역시 가파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고금리를 견디다 못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도 여러 번의 금리 인하를 전망하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이후 3개월 동안 미국 경제가 보여준 것은 ‘끈적한 물가’와 ‘견고한 성장’이었다. 파월 의장 발언 이후 나온 지난 1월과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같은 시기 나온 생산자물가지수(PPI)도 기대치 이상이었다. PPI는 시차를 두고 CPI로 전이되는 구조다. 연준의 예상과 다르게 끈적한 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의 발언은 ‘낙관’으로 일관했다. “연준이 보는 것은 CPI가 아니라 개인소비지출(PCE)이다”라며 시장을 달랬다. 실제 PCE로 본 물가는 CPI와는 달리 완만한 추세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시장은 연준을 믿었다. CPI가 한두 달 기대보다 높게 찍혀 나왔지만 상황이 곧 안정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3월 들어서도 CPI가 높게 나오자 시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국 노동부는 3월 미국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2월 CPI 상승률(3.2%) 대비 숫자가 높게 나왔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3.4%)도 넘어섰다. 전월 대비 상승률 역시 0.4%로 전문가 예상치(0.3%)를 웃돌았다.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8%, 전월 대비 0.4% 각각 상승해 모두 전문가 예상치를 웃돌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미국 3월 소매판매지수는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3월 소매판매지수는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0.3%를 크게 웃돌았다. 소매판매 13개 항목 중 8개가 증가세를 보였다. 전자상거래 2.7%, 기타 소매업 2.1%, 주유소 관련 매출이 2.1% 각각 증가했다.

더 놀라운 것은 2월 지수 확정치였다. 2월 소매판매 잠정치는 전월 대비 0.6% 증가였지만 이게 0.9%로 상향 조정됐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의 뜨거운 경기가 여전하다는 분위기가 지표로 나온 것이다.

매일경제

제롬 파월 의장이 4월 16일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하며 금리 인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진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매판매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해 전체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변수다. 고금리와 고물가 추세에도 소비가 크게 는 것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때마침 나온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성장 예측 프로그램인 ‘GDP나우’는 1분기 미국 성장 추정치를 기존 2.4%에서 2.8%로 상향했다. 고금리에도 여전히 미국이 3%에 달하는 성장을 구가하는 체력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지표를 본 시장은 1월과 2월의 낙관적 기대를 버리기 시작했다. 1~2월 CPI의 상승에도 잠잠한 모습을 보이던 미시간대 기대인플레이션은 3월 들어 치솟았다. 지난 1월과 2월 연준을 신뢰한 시장참가자들은 기대인플레를 묶어두며 인내했지만, 3월 들어 참을성이 바닥나며 추후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형성한 것이다. 지난 4월 12일 나온 미시간대 1년(단기) 기대인플레이션 예비치는 3.1%로 직전월의 2.9%보다 상승했다. 단기 기대인플레는 지난해 12월에 3.1%를 기록한 후 넉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년 장기 기대인플레이션 예비치는 3.0%로 올랐다. 직전월의 2.8%보다 역시 올라갔다.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11월 3.2% 이후 처음으로 다시 3%대로 상승했다.

미시간대는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소폭 오른 것은 인플레이션 둔화가 정체될 거란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지난해만 하더라도 ‘가능성 있는 카드’로 남겨졌던 경기 침체 변수는 이제 폐기 직전 단계로 넘어갔다.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한 분기별 설문조사에서 경제학자 69명이 예상한 향후 1년 동안의 미국 경제 침체 가능성은 29%로 나왔다. 1월에 나온 지난 분기 조사 당시 기록인 39%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 지난 2022년 4월 찍은 28%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경기 침체 가능성은 낮아
지난 조사 대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개선됐다. 설문에 참여한 경제학자들은 지난 1월 올해 1~3분기 성장률을 평균 1% 미만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분기에 인플레이션을 조정한 성장률이 1.4%를 찍을 것으로 봤다.

향후 12개월 동안 최소 한 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 비율은 1월의 33%에서 10%로 감소했다. 사실상 경기 침체설을 시장이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임스 스미스 이콘포캐스터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매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존 브루스엘라스 RS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강력한 생산성을 보인 미국 경제가 장기 추세 대비 성장이 더 잘 나오고 인플레이션이 2~2.5%, 실업률이 3.5~4%를 기록하는 선순환 구도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금리 인하를 하기는 쉽지 않다. 월가에서 바라보는 금리 인하 예상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는 이유다. 토르스텐 슬록 아폴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 연준은 금리를 내릴 수 없는 환경에 처하고 있다”며 “올해 금리 인하가 한 번도 없을 가능성을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역시 “이제는 진지하게 연준이 금리를 언제 내려야 하는지에서 금리를 올려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쪽으로 고민의 포인트가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역시 금리 인하 기대감을 빠르게 버리는 분위기다. 물가 상승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거란 전망에 시장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낮추는 분위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소매판매 지표 발표 직후 미국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9월에서야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횟수도 올초 최대 7번에서 1번에 그칠 확률이 높다고 예상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최악의 경우 기준금리 8% 이상 시나리오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썼다.

매일경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으로 촉발된 중동 사태가 이란과 이스라엘 간 분쟁으로 확대되면서 환율과 금값과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이란 사태로 전쟁 가능성이 비화되자 안전자산으로서 달러가치가 추가로 부각됐다. 결국 최근 보인 기록적인 원달러 환율은 이런 상황이 모두 중첩되어 영향을 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스라엘-이란 사태가 미국의 의지대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결국 키는 미국의 물가가 쥐고 있다. 끈적한 물가가 쉽게 내려오지 않을거란 시장 기대감이 커지면 당분간 환율은 고공행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짧은 기간에 차익을 먹고 나오려는 투기 세력에 의해 환율이 오버슈팅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단기간 환율이 위아래로 변동성이 심한 국면에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달러값 상승을 우려하며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어 이 역시 시장에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