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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슈 물가와 GDP

저성장·고물가 덮친 美 …"올 금리인하 없다" 비관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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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미국 경제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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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당국이 '악몽'까진 아니더라도 잠을 설치는 밤을 보낼 것 같다."(로이터통신)

금리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던 각국 중앙은행들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처했다. 통상 성장이 둔화하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있어 금리를 내리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예상치 못한 '쌍고(고금리·고물가)의 역습'에 시장과 금융당국이 혼란에 빠졌다. 시장은 올 초만 해도 '연내 3회 이상 금리 인하'를 점쳤다가 2회로 줄이더니, 이제 올해 인하는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끈적이는(sticky) 인플레이션'에 중동발 고유가 전망까지 나오면서,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6개월 만에 최고치를 넘어섰다.

26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3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도 모두 전망치를 웃돌았다. 이날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3월 PCE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7% 올라 전망치(2.6%)보다 높았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3월 근원 PCE 물가지수도 2.8% 상승해 전망치(2.6%)를 상회했다. 전월 대비로는 0.3% 올랐다. 근원 PCE 물가지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 목표(2%) 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가장 선호하는 물가지표다.

물가는 여전히 견조한데, 성장률은 뚝 떨어졌다. 이날 미 상무부가 발표한 전 분기 대비 미국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 1.6%에 그치며 예상치(2.4%)를 크게 밑돌았다. 작년 4분기(3.4%)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상무부는 "소비자 지출과 수출, 정부 지출의 둔화가 1분기 GDP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인 개인소비지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무부에 따르면 올 1분기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은 작년 4분기(4%)에 비해 줄어 3.6%를 기록했고, 개인 저축액도 같은 기간 8155억달러에서 7557억달러로 감소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오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까지 기준금리 인하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을 가능성은 18.8%로 24일(12.6%)보다 더 높아졌고, 한 달 전 1% 안팎에서 대폭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초 금리 선물 시장의 투자자들은 올해 6차례 인하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단 한 차례 인하를 기대하거나, 전혀 인하를 예상하지 않고 있다"며 "보통 기대 이하의 성장률은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희망을 키우지만, 계속되는 물가 압력이 그런 전망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5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6개월 만에 처음 4.7%를 넘어서며 거래를 마쳤고, 미국채 2년물 금리도 장중 한때 5% 선을 넘어섰다. 문제는 미국의 고물가가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더욱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날 세계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2년간 진행된 원자재 가격의 하향 안정화 추세도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빠르게 둔화되던 원자재 가격은 지난해 10월 가자전쟁이 시작된 이후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 증가, 구리를 비롯한 일부 원자재의 공급 부족 등으로 인해 올해 3%, 내년 4% 하락에 그칠 전망이다.

세계은행은 국제유가의 경우 중동 내 확전으로 원유 수송에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연말까지 브렌트유 기준 평균 배럴당 92달러로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만약 원유 공급 차질이 심각해지면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기면서 세계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추가 상승할 수 있다.

성장은 둔화되는데 물가는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사미어 사마나 웰스파고 수석 글로벌시장 전략가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번 PCE 물가지표는 거의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물가는 여전히 시장과 연준의 기대보다 더 경직돼 있다"고 했다. 비록 연준이 여전히 큰 틀에선 인플레이션 둔화와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기존보다 점차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케빈 버깃 LH메이어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향해 가고 있고 연내 인하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하지만 올해 인하 횟수는 더 적어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연준은 금리를 인하하면 고물가가 고착화되고, 금리를 올리면 경제 성장 둔화를 우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됐다. 이를 가리켜 다이앤 스웡크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연준이 통화정책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평가했다.

금리 인하 기대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올해 9월로 예상하던 첫 금리 인하 시점이 11월 이후로 미뤄졌고, 연내 금리 인하가 없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WSJ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해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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