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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단독]"타인 명의로 사들여"…에코프로, 골프장 불법 매입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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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 측 “골프장 사업 접을 계획”

전문가 “뒤처진 법이라도 준법경영이 우선”

국내 2차전지 소재 대표기업인 에코프로그룹의 계열사가 골프장 조성 과정에서 불법으로 농지를 매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그룹의 이동채 회장이 차명 주식거래로 법정 구속된 상태에서 또 다른 위법 의혹이 불거졌다.

29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 에코프로그룹의 계열사인 ‘해파랑우리’는 골프장을 짓기 위해 경북 포항시 동해면 일대의 임야(입암리 산39 등)를 법인 명의로 매입했다. 해파랑우리는 이 회장과 그의 가족기업인 데이지파트너스가 2020년 각각 지분 14%와 18%를 투자해 설립한 골프장 사업회사다. 문제는 해파랑우리가 임야 외에 골프장 예정 부지에 편입될 논·밭 등 농지를 차명 매수 형식으로 사들였다는 점이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는 일반법인은 매입할 수 없고, 개인이라도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영농 자격이 있는 사람이 관할 기관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야 매입할 수 있다.



왜 남의 이름으로 땅 샀나



이에 해파랑우리는 영농 자격이 있는 K모씨(전 해파랑우리 대표) 명의로 해당 농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현장을 찾아 확인해보니, 이들 부지에서 농사를 지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부동산 등기부상 지목은 답(논)으로 구분돼 있으나, 실제 토지 상태는 잡초와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A씨는 “과거 고조·증조부가 살던 시절에나 농사를 지었지, 지금은 사실상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를 매입한 뒤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농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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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우리가 골프장 사업을 위해 차명으로 매입한 경북 포항시 동해면 입암리 소재 농지의 일부다. 이 땅은 등기부 지목상 논(답)으로 돼 있지만, 잡초만 무성할 뿐 농사를 지은 흔적이 없다.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 등은 2020년부터 해파랑 골프장 사업을 위해 이 회사 지분에 투자했다. 포항=김도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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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를 차명으로 매입한 행위 역시 ‘부동산실명법(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 해파랑우리는 이 회장과 에코프로 가족회사로부터 빌린 돈(차입금) 등을 활용해 농지를 매입한 뒤 등기부상에는 K씨 이름을 기록했다. 이는 부동산 등기를 실질 소유자(실권리자) 명의로 하도록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에 어긋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미공개 정보와 차명 계좌를 이용한 불법 주식 거래 혐의로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구속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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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이에 대해 에코프로 측은 “농촌 지역에서 리조트나 골프장 등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개인 명의로 농지를 취득하지 않고서는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적절한 인수자가 나타나면 (위법 논란이 있는) 골프장 사업을 넘기고 엑시트(exit·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지법은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밝힌 헌법(121조)에 따른 법률이다. 하지만 농업인구 감소로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거나 방치된 땅이 많아 농지 소유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농지법이 여전히 실정법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상, 경영자의 엄격한 준법경영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김경수 법무법인 플래닛 대표 변호사는 “농지법이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도 있지만, 엄연히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만큼 사업자는 최대한 법을 지켜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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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이 지분 투자한 해파랑우리는 경북 포항시 동해면 일대에서 골프장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부지 내 분묘의 주인을 찾고 있는 표지판. 포항=김도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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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에코프로그룹은 이른바 ‘에코 3형제(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머티)’ 등을 거느린 코스닥 대표 상장기업이다. 경영자의 ‘법적 리스크’가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이 회장 법정 구속이 결정된 당일(지난해 5월11일) 에코프로 주가는 6.8%, 에코프로비엠은 4.1% 급락했다.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 회계사는 “경영자의 법적 리스크는 법적 제재뿐만 아니라 기업 평판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준법경영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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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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