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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갑질 의혹’ 주중 한국대사관, 이번엔 ‘대언론 갑질’…“취재 24시간 전 통보하라” 언론 활동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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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 철회·사과 등 요구

‘윤 대통령 친구’ 정재호 대사 갑질 보도 후 조치

경향신문

정재호 중국대사


윤석열 대통령의 친구로 잘 알려진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의 ‘갑질’ 의혹으로 외교부 조사를 받은 주중 한국대사관이 이번엔 특파원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일방 통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 언론사의 중국 베이징 특파원들은 30일 성명을 발표해 주중 한국대사관이 취재를 사실상 허가제로 바꾸는 출입 제한 조치를 마련했다며 해당 조치의 철회와 정 대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성명에 따르면 주중대사관은 전날 오전 특파원단에 “대사관 출입이 필요한 경우 최소 24시간 이전에 출입 일시, 인원, 취재 목적 등을 대사관에 신청해야 한다”며 “신청사항 검토 후 출입 가능 여부 및 관련 사항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특파원들은 성명에서 “기존에 큰 제약이 없었던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을 사실상 ‘허가제’로 바꾸고 취재 목적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이라며 “취재 원천 봉쇄 조치”이자 불통을 넘어서 언론 자유와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의 보도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최근의 언론환경을 고려했을 때, ‘24시간 이전 신청’은 취재 원천 봉쇄 조치”라고 비판했다.

특파원들은 대사관의 이번 결정이 한국 언론들이 정 대사의 갑질 의혹을 보도한 이후 이뤄졌다며 “정 대사의 독단적 판단과 사적 보복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특파원들은 “지난 3월 말 정 대사의 갑질 의혹을 보도한 이후에는 대사관 명의로 특정 언론을 지목해 ‘최전선에서 국익을 위해 매진하는 대사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 지적했다.

특파원들은 미·중 갈등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대사관이 언론을 상대로 불통으로 일관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침해”라며 “대사관의 출입 제한 통보 즉각 철회, 기형적인 브리핑 정상화, 그리고 정 대사의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주중 대사관 측은 보안 문제 때문에 해당 규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최근 출입증을 소지하지 않은 중국인 인력이 대사관을 무단 출입했다는 것이다.

대사관은 해당 규정이 5월1일부터 시행되며 매주 월요일 진행되는 정례 브리핑을 제외한 별도 방문에 적용된다고도 밝혔다. 정례 브리핑은 정 대사가 현장 질문을 받지 않고 e메일로 접수된 사전 질문에만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이 역시 특파원들의 원성을 샀다.

특파원들은 보안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일부 언론이 현지 채용한 촬영기자들과 함께 “정 대사의 갑질 의혹에 관한 의견을 직접 듣고자 대사관 뜰 안에서 현장 취재를 시도했다”며 “대사관 측이 이를 ‘보안 문제’라고 둔갑시켰다”고 성명에서 설명했다. 대사관이 사전 투표 기간에는 한국 언론사에 소속된 중국인이 방송 제작을 위해 출입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이번 성명에는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특파원 36명 가운데 35명이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24시간 전에 취재 허가 받으라니…정재호 대사, 대언론 갑질 멈춰라

주중한국대사관은 29일 오전 베이징 특파원단에 “5월1일부터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이 필요할 경우, 최소 24시간 이전에 출입 일시, 인원, 취재 목적을 포함한 필요 사항을 대사관에 신청해야 한다”면서 “신청 사항 검토 후 출입 가능 여부 및 관련 사항을 안내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기존에 큰 제약이 없었던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을 사실상 ‘허가제’로 바꾸고, 취재 목적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보도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최근의 언론환경을 고려했을 때, ‘24시간 이전 신청’은 취재 원천 봉쇄 조치다. 특히 이번 통보는 지난달 말 한국 언론사들이 정재호 대사의 갑질 의혹을 보도한 이후 나왔다. 이는 ‘불통’을 넘어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무엇보다 대사관이 제시한 특파원 출입 제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대사관은 “최근 한 언론사가 사전 협의 없이 중국인 직원과 함께 대사관 내부에 들어와 촬영하는 ‘보안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출근 시간 갑질 의혹에 대한 대사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 대사관 뜰 안에서 현장 취재를 시도했다. 대사관은 이를 ‘보안 문제’로 둔갑시켜 특파원들에게 출입 제한 조치를 통보한 것이다.

한국 방송사 베이징 지국에서는 촬영인력을 현지 직원으로 채용한 경우가 대다수고, 대사관은 과거 사전투표 취재 등 주요 행사에서도 이들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들의 출입을 문제 삼은 것은 ‘영상 보도’를 하지 말란 말과 같고, 특파원 탄압을 위한 핑곗거리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 직원 출입을 이유로 들면서 한국 특파원 출입을 제한하는 것도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사관의 이번 결정은 다른 해외 공관의 사례를 봐도 이례적이다. 미국 워싱턴과 프랑스 파리 등의 우리 대사관에서는 특파원들에게 사전 출입 신청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특파원들이 우리 국민을 대신해 대사관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특파원의 대사관 출입 제한 결정은 정 대사의 독단적 판단과 사적 보복이 아닌지 의심된다. 정 대사는 임기 내내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 왔다. 모 언론사가 비실명 보도 방침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부임 후 1년 7개월째 한국 특파원 대상 월례 브리핑 자리에서 질문을 받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사전 접수한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정 대사의 갑질 의혹 보도 이후에는 대사관 명의로 특정 언론을 지목해 ”최전선에서 국익을 위해 매진하는 대사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했다“는 내용의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미·중 경쟁이 전례 없이 치열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로 한·중 관계가 변곡점에 놓인 상황에서 주중대사관이 특파원의 취재 활동을 지원,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통과 탄압으로 일관하는 현 상황은 심각한 국익 침해다. 베이징 특파원 일동은 주중한국대사관의 출입 제한 통보 즉각 철회와 기형적인 브리핑 정상화, 그리고 정 대사의 사과를 요구한다.

2024년 4월 30일
베이징 한국 특파원 일동

강정규, 권란, 김광수, 김민정, 김현정, 김효신, 박은하, 박정규, 박준우, 배삼진, 배인선, 송광섭, 송세영, 우경희, 윤석정, 이도성, 이명철, 이벌찬, 이석우, 이우중, 이유경, 이윤상, 이윤정, 이지훈, 이창준, 이해인, 임진수, 정범수, 정성조, 정영태, 정은지, 조영빈, 조용성, 최현준, 홍순도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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