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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기고]정부 R&D 지원, 복잡성을 낮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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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에 있어서 제품, 조직, 프로세스, 전략의 복잡성은 생산성을 떨어뜨려 비용을 증가시킨다.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창의성과 하고자 하는 동기를 저하시키고 협업이나 소통을 가로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플한 디자인의 대명사 애플, 원클릭 쇼핑의 시작 아마존은 복잡성을 혁신적으로 줄여서 성공한 기업이다. 반대로 스타벅스, 필립스, 제록스 등은 사업을 확장하면서 핵심 가치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다양한 제품 구성이나 연구·개발로 한때 위기를 겪었다.

정부는 내년에 역대 최대 수준의 연구·개발(R&D) 예산 편성을 예고하고 다양한 제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비타당성 조사, 평가위원 상피, 연구기간 회계연도 일치 등이다. 그러나 큰 폭의 예산 증액에 앞서 좀 더 근본적이고 일관된 정책 방향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예로 정부 R&D 지원의 복잡성 해소를 들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난립한 R&D 규정과 관리 시스템을 통합해 연구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 2021년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으로 20개가 넘는 정부 부처의 관리 기준을 일원화하고, 2022년부터는 모든 관리기관의 연구과제 관리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한 ‘아이리스’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성과에도 디테일에 있어서는 연구자가 체감하는 통합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기존의 공동관리규정은 20년간 40여차례의 전부 또는 일부 개정을 거쳐 분량과 내용이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심플했다. 연구자들은 9쪽짜리 연구·개발비 계상기준 표만 참고하면 일상적인 과제 수행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책 한 권 분량의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과 관련 매뉴얼을 상세히 찾아봐야 안심하고 연구비를 쓸 수 있다.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으로 사용하던 것을 통합하다보니 기능이 늘어 복잡해졌다. 어떤 처리를 함에 있어 담당자가 클릭해야 하는 횟수가 크게 늘어나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겼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문제는 매년 여러 기관의 의견을 수렴해서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할 때, 논의 구조상 기능을 줄이기보다는 늘리는 쪽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제안된 기능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지 득실을 따져 사려 깊게 추가돼야 한다. 또한, 시스템이 통합되었다고는 하지만 연구자들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연구비 관리는 별도의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그마저도 부처별로 두 개의 시스템(통합이지바로, RCMS)으로 나눠져 있다. 따라서 하나의 과제에 대해서도 시스템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실정이다. 시스템 간에도 수시로 과제 정보 등을 전송해야 하고 심심치 않게 오류가 발생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시스템이 분리되다보니 이를 악용하거나 착각해서 인건비를 양쪽에서 중복 지급받거나 하나의 거래 영수증을 중복 등록하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지원 사업의 수가 너무 많은 것도 복잡성을 증가시킨다. 2022년 기준으로 38개 부처에서 1397개 사업을 통해 7만6052개 과제가 지원되었다. 이는 한명의 담당자가 관리해야 하는 사업의 수를 짐작하게 하고 그만큼 연구자에 대한 행정 서비스의 지연과 질적 저하를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제도 개선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과제를 연중 수시로 신청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과제의 연구기간이 제각각이 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평가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몇년 후 회귀될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일정한 기간에 과제가 공고되어 예측 가능한 것을 더 선호할 수 있다.

아울러 매년 정부 총지출의 4~5% 규모로 막대한 예산이 R&D에 투자되는 만큼 어떻게 지원되고 있는지 국민에게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비슷한 규모의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한 장의 프레임워크로 나타내 알기 쉽게 안내한다.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복잡한 프로세스를 단순화하는 것은 경영의 임무다.”

경향신문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송병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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