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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동아광장/허정]기업 對美투자 러시, 기회 못잖은 위기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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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혜택에 기대감

제조공장 건설 기술도 이전되는 건 리스크

투자 유치 후 기술 경쟁국 된 중국 기억해야

동아일보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우리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첨단산업 분야의 거대 글로벌 기업이 서로 앞을 다투어 대미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 투자가 증가하는데, 그 이유는 2022년 미국의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과 같은 신산업정책 때문이다. 미 정부는 글로벌 제조 기업들에 수백조 원의 세제 지원 및 보조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고, 민간 기업들도 수백조 원의 거대자본을 미국에 투자하려고 한다. 마치 강한 자석에 끌려가고 있는 듯하다.

특정 국가에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몰리는 러시 현상이 앞서도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무역 및 외국인 투자 자유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1세기 초반 중국의 세계시장 등장으로 인해 세계 주요국들도 고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의 성장 이면에는 기술 이전을 강제하는 불공정한 계약 남용과 불법적인 기술 탈취 및 지적재산권 도용 등 자유시장 경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있었다. 이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반덤핑관세 부과로 대응했고, 중국도 미국과 유럽에 대한 반덤핑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많은 통상 전문가는 중국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했다.

실제 2010년 중반부터 중국 정부는 해외 의존적인 경제보다는 자국 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중국 내 외국기업들의 수입보다 중국 기업들의 수입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생산성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한국도 반도체 분야를 제외하고 보면 이미 2010년 중반부터 대중국 무역적자가 생긴 것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2018년부터 현재 2024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상황이 모두 뒤집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미국은 중국을 경제 침략국이자 비시장경제로 규정했고, 2018∼2019년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이 발생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그동안 중국에 투자됐던 공급망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전 세계 국가들은 회복 탄력성이 강한 새로운 대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우리도 수출입 다변화 및 투자 다변화를 필두로 한 새로운 통상정책을 시행 중이다.

중국은 이제 더는 외국기업들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이용해 기술 이전을 대놓고 요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강력한 자국 중심의 제조공급망을 구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첨단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와 산업 육성을 통해 주요 선진국들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도 줄어들고, 대중국 수출도 하락 추세다. 현재 대중국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미국을 보자. 현재 미국으로의 거대 규모 투자 러시는 20년 전인 2000년 중반의 중국을 연상시킨다. 물론, 미국은 중국처럼 기술을 불법적으로 탈취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을 만들고 세제 혜택 및 보조금 지원 정책을 투명하게 시행함으로써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내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대미 투자 러시의 한복판에 서 있다. 보조금도 생각보다 많고, 각종 혜택을 받으며 기대를 안고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고민해 봐야 할 어려운 숙제를 던진다. 첫째, 미국이 중국처럼 우리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이전하고 있는 기술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기술만이 아니다.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장 건설 기술도 같이 이전되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다시 제조업 국가로 변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대미 투자가 더 많은 수출을 유발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은 중간재가 아닌 소비재 혹은 자본재와 같은 완제품이다. 그동안 중국의 산업 성장이 우리의 대중 수출 증가를 견인한 것은 우리의 중간재 생산 경쟁력이 높았기 때문인데, 미국과의 무역 관계는 그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2024년 미국은 마치 2004년 중국과 유사해 우리 경제 성장을 위한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2034년에도 과연 계속 기회가 될까, 아니면 위기가 찾아올까? 10년 앞을 내다보는 우리 정부의 글로벌 경영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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