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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평신도가 목사에 묻고 항의할 때 기독교 신뢰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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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경일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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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사랑’입니다. 누구를 편들지 않는 무차별적 자비를 가르친 불교와 다른 점이죠. 유대-기독교 전통의 예언자들은 부자나 권력자에 맞서 가난한 자들을 편듭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은 사회적 불의에 희생된 이들이죠. 권력자를 강하게 비판하고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게 바로 기독교 전통입니다.”



최근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불광출판사)를 낸 ‘평신도 신학자’ 정경일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에게 “왜 여러 종교 중 유독 기독교냐”고 묻자 나온 말이다.



군목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신학대학원에도 진학했지만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지금껏 불교를 비롯해 세계 종교를 두루 공부해왔다. 숭실대 철학과를 나와 진학한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는 한국 민족종교인 동학을 주제로 논문을 썼고 군 제대 뒤 입학한 서강대 종교학과 대학원에서는 샤머니즘을 고찰한 석사 논문을 썼다.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쓴 박사 논문 주제는 참여불교와 해방신학 비교 연구다.



3년 전 기독교·천주교 30여 교회와 단체가 힘을 합쳐 만든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는 저자를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 머물며 함께 예배를 드렸고 최근엔 ‘4·16 가족의 신학’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 길희성 교수가 초종교적 영성을 탐구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만든 심도학사 원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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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표지.


그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기독교인 가족들과 안산과 서울에서 예배와 기도 모임을 해왔다. 안산은 첫째 주 일요일에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서울은 셋째 주 목요일에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그는 2015년 1월 안산에서 시작된 예배에 꾸준히 참석해 왔다. “안산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에는 부모님 여섯 분이 참여하는데요. 예배는 부모님들이 이끌고 저는 돕는 역할이죠. 성경을 돌아가면서 읽고 묵상한 뒤 원하는 분이 있으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설교 목사는 따로 없어요.”



그는 “유가족과 예배를 드릴 때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같다”고 전한 뒤 유가족이 자신에게는 “신앙과 신학의 스승”이라고 했다. “유가족의 신앙이 갈수록 깊어진다”고도 했다. “참사로 고통을 겪으며 많은 세월호 유가족이 교회에 실망해 떠났어요. 남은 가족들은 하느님을 포기하지 않고 기독교 신학과 씨름하는 분들이죠. 이분들을 보면서 신앙과 신학이란 뭔지 새삼 배웁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항의하고 질문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세월호 가족들에게서 본다고 했다. “성경 욥기를 보면 욥이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항의합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정의로운 하느님이 이유 없이 고통을 줄 리 없다. 너의 죄를 참회하라’며 비난해요. 하지만 욥은 계속 항의합니다. 그런데 욥기 마지막을 보면 하느님은 욥의 편을 들어주면서 친구들에게 ‘너희가 나를 두고 말을 할 때에, 내 종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2017년 목포신항 기도회에서 당시 미수습자 다윤 양 어머니가 ‘제가 믿는 하나님은 저기 세월호 속에서 우리 가족 9명을 안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저 안에서 우리 딸을 안고 계시다고 믿습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을 듣고 고통받는 민중에게서 예수를 본 정치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이나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민중 메시아’가 떠오르더군요.”



기독교 불교 동학 샤머니즘 등
두루 연구한 ‘평신도 신학자’
세월호 유가족들과 ‘10년 예배’
4·16가족의 신앙 기록 작업 중
“유가족이 신앙과 신학의 스승”



최근 ‘지금 우리에게 예수…’ 내
“예수, 낯선 자들 무조건 환대하고
민중에 대한 사회적 돌봄 매달려”



한완상 교수와 고 길희성 교수 등이 1987년에 만든 ‘평신도 교회’ 새길교회 예배위원장을 2013년부터 9년 동안 지낸 정 원장은 이번 책에서 “이웃종교인과 비종교인들에게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 중 어떤 점이 중요한지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예수가 가장 고통받는 자의 얼굴로 세상에 와 ‘공생애’ 내내 민중에 대한 사회적 돌봄에 매달렸음을 강조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는 ‘여러분은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습니다’라면서 자신을 사회적 소수자, 약자와 동일시했어요. 구원은 종교적 교리의 고백이나 의례의 실천이 아니라 소수자, 약자를 환대하고 돌보는 데서 온다고 가르친 거죠.” 덧붙였다. “예수가 고통받는 자의 얼굴로 온다면 지금 예수가 누구인지 계속 물어야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예수가 고통받는 자연의 얼굴로 올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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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일 연구교수. 김영원 기자


그가 보기에 또 예수는 ‘지금 여기’에 관심이 많았다. “예수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기도하고 낮에는 사회적 돌봄에 힘썼어요. 예수가 내면의 평화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사막에 계속 머물렀을 겁니다.”



그는 이어 “예수는 길 위의 낯선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하고 돌보고 사랑했다”고도 했다. “구약은 ‘이웃 사랑’보다 ‘나그네 사랑’을 더 강조했어요. 유대교 랍비 조너선 색스는 구약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한 번 나오지만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려 36번이나 나온다는 걸 강조해요. 예수는 한 걸음 나아가 나그네 사랑을 하느님 나라의 무조건적 환대로 급진화시켰죠. 병자와 장애인, 이방인도 경계 없이 접촉했고, 유대 민족의 배신자로 배척된 세리 자캐오도 환대했어요. 예수는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굉장히 급진적인 사고를 했어요.”



지은이는 약자에 대한 우선적 사랑이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기독교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가장 반대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요. 다른 이슈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교인들도 동성애나 이슬람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반대합니다. 성경에서 죄라고 했다거나 목사님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대죠. 동성애는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고, 성적 지향은 개인적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게 세계 의학계가 합의한 상식인데요. 교회만 상식을 버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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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일 연구교수.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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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자 그는 평신도가 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평신도 모두가 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유하는 게 바로 신학이거든요. ‘신학’의 애초 뜻도 ‘신에 대해 말하기’입니다. 목사 이야기만 맹신할 게 아니라 목사에게 질문하고 항의하고 또 스스로 공부할 때 신학도 깊어집니다.”



새길교회와 같은 평신도 교회의 유효성에 대해 묻자 그는 요즈음 들어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답했다. 그는 새길교회 예배위원장 시절 ‘평신도 설교’를 연간 약 30회까지 크게 늘리기도 했다. “사실 평신도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설교입니다. 설교는 신학을 전공한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요.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신학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요. 목사가 일주일에 몇 편씩 ‘대량생산’하는 설교보다 평신도가 삶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 몇 달 동안 준비한 한 편의 설교를 부들부들 떨면서 나누는 게 훨씬 진정성 있고 힘이 있어요.”



그는 인터뷰 끝에 다른 종교인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예수를 매력적인 인류 공동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또 다른 영적 스승인 베트남 스님 틱낫한(1926~2022)도 예수와 붓다를 동시에 ‘영적 조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한 종교로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해결할 수 없어요. 하느님도 여러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잖아요. 각 종교의 장점을 배우고 공부할수록 제 기독교 신앙도 깊어지고 풍부해진다는 생각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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