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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선정

尹 "R&D 예타 전면폐지하라"…저출생·의료·청년 집중투자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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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를 대폭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그간 R&D 예타 완화나 선별적 면제는 거론돼왔지만, 아예 R&D 분야의 예타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내년도 예산안과 중기 재정운용 방향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체다. 이 회의에서 제시된 방향성에 따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편성된다.

R&D 예타 전면 폐지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주요국이 첨단분야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자칫 예타에 발목 잡혀 R&D가 원활하게 진행 안 되면 기술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현재는 총사업비가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인 재정사업을 진행하려면 예타를 거치도록 돼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에 발맞춰 R&D예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정부는 올해 삭감됐던 R&D 예산도 내년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릴 방침이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재정사업도 전면 개편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국가적 비상사태인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출산율 제고를 위해 재정 사업의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 전달 체계와 집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이후 총 370조원에 달하는 저출생 대응 예산이 투입됐지만 비효율 탓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부처 간 칸막이로 중복·낭비되는 예산도 적지 않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회의 마무리 발언에서도 “우리 사회에 비효율적인 소모적 경쟁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출산의 의지가 꺾이게 된다”며 “저출생 개선 정책을 만들 때 범사회적 인식 제고 작업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기존 저출생 문제를 담당해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정식 부처인 저출생대응기획부로 승격하고, 저출생부 장관에게 사회부총리를 맡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대통령실에 저출생수석실도 신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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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바고 행사 종료시*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2024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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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는 ▶민생안정 ▶역동경제 ▶재정혁신의 3개 세션에 걸쳐 3시간 30분 동안 토론이 진행됐다.

민생안정 세션에선 약자 복지 및 의료 개혁, 청년 지원 방안이 다뤄졌다. 윤 대통령은 “약자복지 정책도 업그레이드해서 보다 촘촘하고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며 “취약계층에게는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계속 늘려 생활의 짐을 덜어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초연금은 윤 대통령 임기 내 40만원까지 인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노후 소득보장제도의 하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때인 2014년 7월 기초연금을 도입할 당시에는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했지만, 이후 금액이 불어나 2021년부터는 월 30만원을 주고 있다. 정부는 기초연금 10만원 인상(30만원→40만원)을 통해 노인 빈곤율이 5%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분석한다.

정부는 임기 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인 생계급여 대상자를 35%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기준 중위소득이란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다. 정부는 생계급여 대상자를 35%까지 확대하면 21만여명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것이라 분석한다.

의료 분야 관련 5대 핵심 재정 사업에도 예산을 집중한다. 윤 대통령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의료개혁 완수를 위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전략이 필요하다”며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 체계, 지역의료 혁신 투자, 필수의료 기능 유지,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필수의료 R&D 확충”을 언급했다.

청년 지원도 강화한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을 위해서도 더 각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대폭 확충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을 현재 100만 명에서 150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주거장학금을 신설해 연간 240만원을 지원하고, 현재 12만 명인 근로장학금 수혜 대상도 내년부터 20만 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역동 경제’ 세션에서는 R&D 지원 강화 외에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 지원 방안 등이 논의됐다. 정부 관계자는 “초격차 기술 경쟁력과 인재 확보를 통해 국가 간 경쟁에서 선도적 위상을 구축하는 일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금융과 민간펀드 등을 통해 최소 10조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평택과 화성, 용인 등 경기 남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구상을 밝힌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시간이 보조금이라는 생각으로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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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정이다. 올해 들어서도 1~3월 기준으로 세수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하에 총지출 증가율을 억제하다 보니 수입과 지출 모두에서 압박이 가해지는 중이다. 이날 윤 대통령 역시 “앞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정책의 재원은 기존 예산 효율화를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할 일이 태산이지만 재원은 한정돼 있어 마음껏 돈을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 재정을 살펴볼 때면 빚만 잔뜩 물려받은 소년 가장과 같이 답답한 심정이 들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 장관들에게 “부처 예산을 편성할 때 키워야 하는 사업과 줄여야 하는 사업을 잘 구분해 달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최우선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부처별로 사업 타당성 전면 재검토 등 덜어내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국무위원 전원, 대통령실 참모진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장 배경에는 ‘알뜰한 나라살림, 민생을 따뜻하게’라고 쓴 걸개가 내걸렸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책 홍보와 관련해 “앞으로 각 상임위 여당 의원과 소관 부처 장관이 국회 소통관에 같이 가서 설명해 달라”며 “저 역시도 브리핑룸에 가서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해야 할 일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나머지 없애야 할 것은 확실하게 구조조정 해달라”고 당부했고,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정 협의를 자주 열어 함께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께 적극적으로 알리자”고 제안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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