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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현장의 시각] 극심한 의정갈등...의료계와 정부가 만나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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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정아 기자.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기각 결정을 내리며 증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전공의들은 여전히 병원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버티며 의정갈등이 극한에 치닫고 있다.

반면 학원가는 ‘의대 문’이 넓어지며 입시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재수생, 삼수생은 물론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심지어는 직장인들도 의대 입시에 뛰어들었다. 강남에는 ‘직장인 야간 의대반’, ‘최상위 문과생 의대반’ 같은 특별반도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의대 입시가 몇 년만 늦어져도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마흔줄에야 ‘의사다운 의사’ 전문의가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늦깎이 의대 입시생들은 이런 걱정이 없다. 굳이 전문의라는 명예와 전공과목이 없어도 피부 미용 치료로 고액을 벌 수 있어서다.

흔히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부르는 필수진료과의 붕괴는 비단 최근 일이 아니다. 의료계는 마땅한 대책 없이 의사 수만 늘려서는 지방의료·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파탄낼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서울’, ‘강남’의 ‘피부 미용’ 의사만 잔뜩 늘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사들은 관련 주제가 나오면 자연스레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이야기를 꺼낸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아기 4명이 세균 감염으로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다. 이듬해 재판 중이던 의료진은 구속됐고, 의료계는 너무 지나치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이전까지 나름 ‘인기과’였던 소아과는 이후 전공의 지원률이 뚝뚝 떨어졌다. 2019년에는 80%나 됐지만 2020년 68.2%. 2021년 34.4%, 2022년 27.5%, 2023년 16.6%으로 급감했다. 물론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드는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담당의가 고의로 저지른 게 아닌 의료사고에 대해 법의 채찍질이 너무 가혹했다며, 소아과 기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기를 받는 산과도 비슷하다. 의료사고가 업무상과실치사로 이어져 처벌 받는 사례가 여럿 나오자 분만을 기피하는 병원이 늘었다. 지금은 산부인과 의사 절반이 분만을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인과와 난임 치료를 선호한다.

결국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대로 의대 증원만 해서는 서울의 피부 미용 의사만 늘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은 의대 입시생들이 장차 ‘돈’ 대신 ‘인명’을 택하도록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의정갈등을 정리하고 화합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정도와 시기, 방식을 의료계와 함께 차근차근 논의해야 하고, 의료계도 정부에게 세운 날을 거두고 의료 공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료개혁의 본 목적은 필수의료·지역의료 정상화다.

이정아 기자(zzung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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