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스마트폰에서 돈이 뚝딱 나와요”… 현금 없앤 中서 청소년 경제교육 ‘구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현금 없는 사회’를 달성한 중국이 청소년들의 화폐 인식 부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마트폰 QR코드로만 거래하다 보니 기본적인 화폐 단위를 모르는 것은 물론, 게임 속 사이버머니처럼 돈을 가볍게 생각해 경제 관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청소년들 사이에선 스마트폰만 있으면 돈이 끝없이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것이 고착화할 경우 금융 사기와 신용불량 확산 등의 사회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중국 광명일보, 펑파이 신문 등에 따르면, 최근 후베이성 우한시 제1중학교 부속 초등학교 1학년 학급에서 화폐 교육을 실시한 결과 40명 학생 중 대부분이 화폐 단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 화폐인 인민폐는 위안(元)·자오(角·10자오=1위안)·펀(分·10펀=1자오)으로 구성돼 있고 1, 2, 5, 10 단위로 지폐와 동전이 있다. 3위안6자오짜리 물건을 살 때는 1위안, 2위안 지폐 한 장씩과 1자오, 5자오 동전 하나씩 내면 되는데 학생들은 “3위안 지폐 한 장, 6자오 동전 하나를 주면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베이징 한 시장에서 QR코드로 결제하고 있는 시민./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폐 단위는 물론 사용 방식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헤이룽장성 우창시에 거주하는 수학교사 루린씨는 최근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 “20위안짜리 지폐 두 장으로 30위안짜리 물건을 어떻게 살 거냐”라고 물었는데, 아들은 “20위안짜리 한 장을 먼저 가게 사장님에게 주고, 나머지 20위안짜리 한 장은 반으로 찢어서 주면 된다”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루린은 “아이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에서 현금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은 2010년대 초부터 모바일 결제가 급속도로 확산했다. 결제 애플리케이션으로 가게가 제공하는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자신의 QR코드를 가게가 스캔하면 연동된 은행 계좌에서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을 인용해 “중국내 모바일 결제 보급률이 86%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은 2016~2017년생으로, 모바일 결제가 완전히 자리잡은 뒤에 태어나 명절 세뱃돈 외에는 일상에서 현금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결제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청소년들은 돈을 게임 속 사이버머니처럼 여기게 되고, 이는 돈이 무한정 자원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유치원생 딸을 둔 리웨이씨는 “딸이 캐릭터 랜덤박스 100개를 사달라고 해 100개를 한꺼번에 살 수는 없다고 하니, 딸이 ‘QR코드만 인식하면 돈이 나타나지 않냐’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베이징일보는 “아이들은 100위안짜리도, 300위안짜리도 모두 똑같이 저렴하다고 생각한다”며 “가격에 대한 민감성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청소년들의 경제 관념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이 부족한 상황에 익숙지 않다 보니 과소비를 일삼게 되고, 이는 불법 대출 등 금융 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결국 신용불량자를 대거 양산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실물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금융 교육의 첫 단계인 만큼, 관련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중남재경정법대 금융학원의 후홍빙 부원장은 “시대가 발전하면서 청소년이 현금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돈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며 “현금은 여전히 기본적인 지불 수단인 만큼, 화폐 이해 수업에 공을 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윤정 특파원(fact@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