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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헤어지자" 한마디에 또 교제폭력…'안전 이별' 대행업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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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위해 통제 행위 처벌해야"

더팩트

최근 교제 폭력이 잇따르면서 이별 후에도 전 연인의 집착에 공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안전 이별' 대행업체까지 등장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예방을 위해 상대방의 통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 /박헌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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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황지향 기자] "부재중 전화가 50통 넘게 찍혀 있었어요. 이러다가 부모님한테까지 해코지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직장인 강모(28) 씨는 최근 이별한 연인의 반복된 연락에 공포를 느꼈다. 1년 남짓 교제했던 전 남자친구는 이별 후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 A 씨의 일상을 방해할 정도였다.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무시했지만, 모르는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강 씨는 "집 앞에 찾아와 부모님을 두고 협박하는데 이러다가 진짜 해코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튀어나올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친구들이 저에게 안전 이별을 기원해주고 있는데 무사히 그러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근 교제 폭력이 잇따르면서 이별 후에도 전 연인의 집착에 공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안전 이별' 대행업체까지 등장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예방을 위해 상대방의 통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3939명으로 2020년 8951명보다 무려 55.7% 증가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연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해 구속 송치된 의대생 최모(25) 씨도 "헤어지자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에는 3년간 교제했던 전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둔기를 휘두른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지난 18일 새벽 4시께 택배로 선물을 보냈다며 집 밖으로 전 여자친구를 유인한 뒤 둔기를 휘둘렀다. 경찰은 이 남성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최근 온라인에는 안전한 이별을 묻는 질문이 많아졌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안전하게 이별할 방법을 묻는 질문에 "돈을 빌려달라고 해라", "몰래 이사를 해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강 씨 역시 주변에서 "안전 이별하길 바란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그런데 어떻게 하는거냐"고 되물었다.

급기야 안전 이별 대행업체까지 등장했다. 한 업체는 '헤어지고 싶은데 말하기 곤란하신가요? 고객님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상담해 드리겠습니다'며 안전 이별 대행을 홍보했다. 또 업체 사이트에는 수십 개의 이별 상담 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비용은 상담 이후에 견적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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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3939명으로 2020년 8951명보다 55.7% 증가했다. 사진은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의대생 최모 씨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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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문가들은 "공권력 미온적 개입의 결과물"이라며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물리적 교제 폭력 전 단계는 대부분 상대방을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라며 "교제하는 동안 끊임없이 집착하고 확인하는 전화, 영상통화, 메신저 확인, SNS 단속 등의 행위가 통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런 통제 행위부터 처벌을 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교제 폭력은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제 폭력과 관련된 특별법이 21대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리적인 폭력이 일어날 경우에 형법으로만 처벌하게 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현재 교제 폭력은 주로 형법상 폭행과 협박죄가 적용되는데 피해자의 의사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허 조사관은 "강한 통제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결별을 통보하면 물리적 폭행으로 이어지는데 지금의 형법은 폭행 이후에만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지적했다. 폭행 등의 물리력이 있기 전까지는 친밀한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해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피해자가 마치 이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원한을 갖도록 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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