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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앞서간 이들의 멋진 양보 [인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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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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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장남보다 차남이 잘되는 이야기가 유독 많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장자가 우선시되는 전통이 확실했다. 장남은 상속받을 때 동생보다 월등히 많이 받았다. 그래서 성경이 참 역설이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는 차남으로 자라면서 설움을 많이 겪었는데, 성경에서 늘 동생이 형보다 잘되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생 야곱은 형을 제치고 축복을 더 많이 받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었다. 요셉은 거의 막내였지만 많은 형을 제치고 가장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질투한 형 가인에게 비록 살해당했지만, 동생 아벨은 형보다 더 인정받는 자였다. 다윗도 많은 형을 제치고 왕으로 선택되었으며, 동생 라헬은 언니 레아보다 훨씬 더 사랑받았다. 나도 장남인데 인정한다. 하나님과 우리 부모는 우월한 유전자를 나에게는 아끼고 동생에게는 듬뿍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는 가축이든 사람이든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장자는 동생보다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특권이 있기에 희생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장남이나 장녀는, “형이 양보해야지” 혹은 “언니가 참아”를 자주 듣는다. 물론 강하게 반박할 동생들도 많겠지만.

어느 날 예수의 제자들이 누가 진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스승과 대화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며 예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첫째가 된 사람들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된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마태복음 19:30). 자신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여기는 유대인들, 예수의 장자라고 여기는 그의 제자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들이 특권만 누리려 하지 양보하거나 희생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가 되어 특권을 누리려는 생각을 보이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가복음 10:44).

성경은 특권을 입에 물고 태어난 첫째보다도 나중 된 사람이 더 잘된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한다. 특권이 있기에 희생할 줄 알아야 함도 가르친다. 장자는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희생과 양보는 형이 해야 멋있고 명분도 좋아 보인다. 먼저 앞서간 이들이 뒤처진 이들을 위해 배려하고 양보해야 선진국이 된다. 양보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바보가 필요하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바보가 되기 위해 장자 된 이들이 바로 교회와 신앙인이다. 이들마저 이길 생각만 하고 질 생각을 안 한다면, 기독교는 세상에 천국이 아닌 지옥을 부르는 집단이 될 것이다.
한국일보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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