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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시위와 파업

‘녹색 스프레이 시위’ 기후활동가들, 대법 “재물손괴 아냐”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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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21년 2월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 ‘두산타워’ 앞에서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두산중공업이 베트남 하띤 성 석탄화력발전소 ‘붕앙2’ 건설 설계시공파트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탈석탄을 실현하고 석탄발전 사업을 철회하는 데 두산이 앞장서라”라고 촉구했다. 분당/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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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조형물에 스프레이칠을 한 기후활동가들의 시위가 ‘재물손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미관을 해치는 정도도 아니고, 바로 지우기까지 했는데 이를 처벌하면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두산중공업 본사 타워 앞의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하는 등 집회신고 없이 옥외집회를 열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기후활동가 2명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기후긴급행동 활동가인 이들은 지난 2021년 2월18일 경기도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타워 앞에 설치된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하고 조형물 위에 올라가 석탄화력발전소 시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펼쳤다.

1심 법원은 집회 미신고, 재물손괴 모두 유죄로 보고 피고인들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과 200만원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으로 올라온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스프레이를 뿌린 행위가 손괴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형법 제366조에는 재물손괴죄를 타인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지난 2007년 대법원 판례는 재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 또는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경우가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활동가들이 두산 회사의 조형물의 효용을 해하지 않아 재물손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미리 준비한 물과 스펀지로 이 사건 조형물을 세척했으므로 본래의 사용 목적이나 기능의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스프레이를 분사한 직후 바로 세척했고, 여기에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두산중공업은 활동가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1심 법원의 기각 결정 뒤 그대로 확정됐다.

또한 “스프레이가 남은 조형물 일부 부분은 조형물 중 문자 부분을 지지하는 대리석의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 한정되는데, 대리석 부분은 야외에 설치돼 비·바람·오수와 오물 등에 노출된 상태여서 자연스럽게 오염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도 했다. 대리석 부분의 스프레이 흔적이 조형물 전체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며 대리석의 훼손이 피고인들이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위 때문이라거나 원상회복에 필요한 비용이 얼마나 드는 지에 대한 증명도 이뤄지지도 않았다는 취지다.

이번 사건에선 이들이 물로 지워지는 스프레이를 칠하고 곧바로 지운 행위가 판결에 반영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조물 등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구조물 등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인지 아닌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하는 문제로, 낙서행위가 모두 손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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