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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지구당 부활은 정치영역의 격차해소 vs 당대표 노린 얄팍한 술책 [2027 與잠룡리포트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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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與잠룡리포트⑥]

한동훈·오세훈·홍준표·안철수·나경원은 요즘

아시아투데이

(왼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정재훈 기자, 송의주 기자,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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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박지은 기자 = 이번주 여권 최대 화두는 '지구당(地區黨) 부활'입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출마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는데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대 국회 개원 첫 법안으로 발의하는 등 입법 추진에 나섰습니다. 지구당 부활에 대해 여권 차기 주자들도 제각각 다른 입장을 냈는데요. 일단 크게 분류해보면 나경원, 안철수, 윤상현 의원은 찬성했고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반대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지구당 부활이 여권 차기 주자들 사이에 왜 이슈가 됐는지 알아볼까요?

◇지구오락실은 아는데 지구당은 뭐지?
지구당은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설치돼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으며 당원을 관리했던 정당 지역 조직입니다. 그러니까 전국에 있는 SK텔레콤 직영 대리점 같은 거라고 합니다. 국민의힘의 전국 지역구 대리점이 곧 지구당이었던거죠.

과거 정당은 '중앙당-시도당-지구당' 3층 구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국에 사무실을 운영해야 하니 돈이 많이 들었고,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차떼기 대선 자금' 사건을 계기로 역사속으로 사라졌어요.

차떼기 대선 자금 사건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도 등장합니다. 순양그룹이 대선 후보들에게 사과 상자에 담긴 현금을 트럭으로 실어다 주는 장면인데요. 그때 트럭까지 대선 후보 측에 선물(?) 합니다. 이걸두고 '차떼기'라고 불렀다고 해요. 돈을 트럭째 줬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이 사건을 계기로 20년전 정치권에는 '돈 안드는 정치',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바람이 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돈 많이 드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지구당 폐지 법안을 발의했고, 2004년 국회를 통과합니다. 오 시장은 이때도 '초선이지만 불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해 주목받았죠.

하지만 정당의 지역 '풀뿌리 조직' 역할을 해 온 지구당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먼저 지구당이 사라진 자리를 당협위원회가 메웠는데요.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회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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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송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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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의원은 지역구 사무실을 낼 수 있고, 정당과 자신의 이름을 넣은 간판도 걸 수 있습니다. 또 지역구 사무실에 유급직원을 둘 수 있어요. 후원금도 1년에 1억5000만원씩 걷을 수 있대요. 선거를 치르는 해엔 3억원까지 가능하고요.

반면 원외 인사인 당협위원장은 당협사무실을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자신의 돈으로 '산악회', '포럼', '연구소' 등을 열죠. 이 사무실에서 당협위원회 관련 회의도 하면 안 됩니다. 후원금은 당연히 걷을 수 없고요. 어떤 당협위원장들은 그 지역구의 구의원, 시의원들과 공동 사무실을 얻어서 한 귀퉁이에 책상을 두고 업무를 본다고 합니다. 이 마저도 힘든 분은 '핸드폰 당협위원장'이라고 부르는데요. 사무실 없이 평소엔 생업에 종사하다가 당원들과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네이버 밴드로 소통하고 또 정치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이에요.

'돈 안드는 정치'를 위해 지구당을 없앴다지만, '돈 없는 사람은 정치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푸념이 나온 지 오래인 이유죠. 한 원외 인사는 "왜 변호사들이 정치를 많이 하는 줄 아느냐? 변호사는 자기 지역구에 사무실을 낼 수 있고 수입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당협위원장을 맡은 변호사도 자기 변호사 사무실에서 당협 관련 회의를 했다간 '쇠고랑'을 찰 수 있대요.

국민의힘이 지난해 여름 '수도권 위기론'으로 들끓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지난 20년간 국민의힘이 현역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지역구가 많은 수도권일수록 지역 조직이 와해돼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왔었습니다. 정당의 공식 지역조직인 지구당을 부활시켜 원외 인사들이 거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요.

문제는 현역 의원들은 지구당 부활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본인 지역구에 경쟁 당에서 공식 사무실을 운영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니 반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입법 과정이 꽤 험난할 것 같다고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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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경원 의원, 한동훈 전 위원장, 안철수 의원 /이병화 기자, 송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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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한동훈, 나경원, 안철수 vs 반대하는 홍준표, 오세훈
한동훈 전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차떼기'가 만연했던 20년 전에는 지구당 폐지가 '정치개혁'이었다"며 "지금은 기득권의 벽을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남겼습니다. 지구당 부활을 "정치영역에서의 격차해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죠.

수도권에 기반을 둔 나경원·윤상현 의원도 지구당 부활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현실적인 문제를 이유로 지구당 부활을 주장했습니다.

윤상현 의원은 22대 국회의원 워크숍 첫날(30일) 기자들과 만나 "수도권과 중원에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줘야 될 것 아닌가?"라며 '지구당 부활'을 포함한 정치개혁 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원외 인사는) 문자도 제대로 보낼 수 없고, 당협 사무실도 만들 수가 없다"며 "한마디로 정치 신인들의 진입 장벽을 계속 높게 쌓는 게 현재의 시스템"이라고 했습니다.

안철수 의원도 "당협위원장은 사정상 사무실조차 열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점이 대두된 게 아니냐"며 "이런 부분은 당 내에서 사무실을 내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동작을에서 4년간 원외 당협위원장 생활을 한 나경원 의원도 "내가 해보니까 지구당 부활은 필요하다"고 힘을 실었어요. 참고로 나 의원은 지난 연말 발표된 국민의힘 당협 성적 순위에서 원외 1등을 차지했는데요. 원내대표까지 했던 유력 정치인도 원외 당협위원장 생활은 쉽지 않았던거죠.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구당 부활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과거 지구당은 지역 토호의 온상이었다. 선거와 공천권을 매개로 지역 토호-지구당 위원장-당대표 사이에 형성되는 정치권의 검은 먹이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것이 오세훈법 개혁의 요체였다"며 "여야가 동시에 지구당 부활 이슈를 경쟁적으로 들고 나온 이유는, 당대표 선거에서 이기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라고 썼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금 벌어지는 지구당 부활 논쟁은 반개혁일 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략적인 접근에서 나온 말"이라며 "민주당은 개딸 정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고 우리 당은 전당대회 원외 위원장들의 표심을 노린 얄팍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했고요.

오시장과 홍 시장의 주장에 대해 '정치인 언어 번역기'를 돌려보면 '한동훈이 지금 당대표 나오려고 원외 인사들한테 달콤한 주제를 던진거야' 정도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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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과 추경호 원내대표가 30일 오후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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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시점에 한동훈은 지구당 부활을 이야기하나
한 전 위원장이 이 시점에 지구당 부활을 제시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일단 짧게 보면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역구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원외 인사들을 우군으로 확보하겠다는 의미가 있고요.(국민의힘은 지역구 현역이 90명 뿐이니까요.)

길게 보면 수도권 참패의 원인 중 하나를 20년 전 사라진 지구당 부재의 여파로 보고 '당 재건'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렇게 가다간 다가올 지방선거, 대통령선거에서도 어려움을 겪을게 뻔하니 '셀프 수리'에 나섰다고 해야할까요.

관찰자 입장에선 여권의 유력 주자가 한국 정치의 해묵은 문제점을 언급해 판을 키웠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도 밝혔듯이 30대인 기자에게도 지구당은 조금 낯선 단어인데요. 현역 의원은 물론 정치 전문가들에겐 굉장히 오래된 이슈라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지구당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한 전 위원장이 언급해 이슈가 됐다고요.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가 박과장의 비리로 중단됐던 요르단 중고차 사업을 되살리는 장면 혹시 아시나요? 오차장이 "회사에서 한번 접은 사업을 다시 하자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다그지차, 장그래는 "비리를 걷어내면 참 좋은 사업이라 하지 않는게 아깝다"고 합니다. 지금은 20년전과 다르니 여러 '클린 장치'를 두고 지구당을 되살리자고 주장하는 걸 보며 미생의 한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만나봤던 원외 위원장들은 하나같이 "현수막 하나 거는 데도 얼마가 드는 지 아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현수막을 걸거나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당에서 지원같은 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죠. 지구당이 2004년 없어졌다고 하는데, 그때와 지금의 우리 삶의 모습이 너무 다르지 않나요? 당의 '꼬리칸'에 타 있는 원외 인사들의 목소리에 국회에서도 귀를 더 기울여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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