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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현대로템, 30년 숙원 ‘고속철도 수출’ 성공… “민·관 합동으로 이뤄낸 역사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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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고속철도차량 첫 해외 수출 성과

우즈벡 시속 250km급 고속철 6편성 수주

KTX-이음급 동력분산식 고속철도 공급

“대통령부터 기재부·국토부·외교부까지 정부 전폭 지원”

수주 규모 크지 않지만 수출길 개척 의의

동아일보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왼쪽)과 주파르 나르줄라예프 우즈베키스탄철도공사 사장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대통령궁에서 열린 고속철 공급계약 체결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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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이 30년 숙원사업이었던 고속철 해외 수주에 성공했다. 이번 수주로 전차 등 방산 무기체계와 전동차에 이어 고속철이 현대로템 해외 수출 품목에 추가됐다.

현대로템은 14일 우즈베키스탄(우즈벡) 철도청(UTY, Uzbekistan Temir Yo’llari)이 발주한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공급 및 유지보수사업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수주 규모는 약 2700억 원이다.

이에 따라 현대로템은 최고시속 250km급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 총 6편성을 우즈벡에 공급한다. 편성당 6량이 아닌 객차 한 칸이 추가된 7량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우즈벡 공급 차량은 국내에서 운용 중인 고속철도 KTX-이음(EMU-260)과 비슷한 급으로 총 좌석 수는 389석이다. 참고로 현대로템은 KTX-이음에 이어 최고시속 350km급 차량인 KTX-청룡을 국내에 납품한 바 있다. KTX-청룡은 지난달부터 영업운행에 돌입했다.

우즈벡 철도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 설계도 적용된다. 우즈벡은 한국(1435mm)과 궤도 너비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춰 1520mm로 폭을 늘린 광궤용 대차를 공급한다. 동력장치도 현지 전력체계와 호환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우즈벡 역사 플랫폼 높이는 200mm로 국내보다 낮기 때문에 차량 내 계단도 설치된다고 현대로템 측은 전했다. 여기에 사막 기후의 높은 고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성능을 발휘하고 외부 먼지나 모래를 차단하는 방진 설계도 적용된다.

좌석등급은 VIP와 비즈니스, 일반 등 3종으로 구성된다. 장거리 운행을 고려해 차량 내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식당 칸도 마련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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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이 우즈베키스탄에 납품 예정인 고속철도차량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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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로템이 공급한 고속철은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부터 부하라까지 약 590km 구간과 향후 개통 예정인 부하라~히바(430km) 구간, 미스켄~누쿠스(196km) 구간 등 총 길이 1216km 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특히 우즈벡 현지에서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이 공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력분산식은 고속철 최신 동력 전달 방식이다. 메인 동력차가 홀로 모든 차량을 이끄는 동력집중식과 달리 전 차량에 동력이 분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력집중식과 비교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면서 가속이나 감속 성능도 우수해 역간 거리가 짧거나 곡선 선로가 많은 철도 환경에서 유리하다. 국내 KTX의 경우 산천이 동력집중식, 이음과 청룡은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산 고속차량의 역사적인 첫 해외 시장 진출이 성사된 데에는 임직원들의 노력을 비롯해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외교와 전폭적인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특히 작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벡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고속철 등 대규모 교통 인프라 사업과 관련해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우즈벡 금융 분야 지원도 드러나지 않은 공헌이라는 평가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이번 사업 성사를 위해 우즈벡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으로 금융지원을 결정하면서 수출길 개척에 힘을 보탰다. 해외 철도 선진국들이 국제 입찰에서 자국 기업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매국에 양허성(차입국에 이자율, 상환·거치 기간 등을 유리하게 제시하는 것) 자금을 제안하는 관례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한다.

국토교통부와 외교부도 거들었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50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를 개최해 회원국인 우즈벡에 국내 고속철 기술을 알리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외교부의 경우 작년 ‘한-우즈벡 비즈니스포럼’을 진행했고 올해 3월에는 ‘제16차 한-우즈벡 정책협의회’를 열어 비즈니스 외교 여건을 조성했다. 주우즈벡 대한민국 대사관과 주한 우즈벡 대사관 역시 양국 사업 협력이 성사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022년 11월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회의 후속으로 출범한 정부 주도 ‘원스톱 수출수주지원단’이 민간 기업의 수주 사업을 정부간 협력 사업으로 격상시키는 맞춤형 지원으로 확대해 긍정적인 성과를 이끌어낸 사례라고 평가한다. 지원단은 현대로템이 우즈벡 정부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고속차량 제작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정부 간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작년 9월 개최된 양국 경제부총리 회의에서는 고속차량 수주 사업이 논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현대로템이 우즈벡 고속철도차량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다.

수주 규모가 2700억 원 수준으로 조 단위 수주가 체결되는 방산이나 전동차 사업보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국산 고속철도차량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에만 국한됐던 고속차량 제작·운영 실적이 해외로 확장되면 추후 국제 입찰 시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다른 국가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은 고속차량 연구·개발부터 함께 해 온 국내 128개 부품협력업체들과 지속가능한 철도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고속철 해외 수주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사업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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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고속철도차량 주요 개발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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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차량 국산화는 장기적으로 해외 수출을 목표로 착수됐다. 약 30여 년간 연구·개발과 안정화 단계를 거듭하면서 2조7000억 원이 넘는 민관 자본이 투입됐다. 지난 1994년 당시 프랑스 철도차량 제작사 알스톰(Alstom)과 맺은 기술 이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다른 국가 수출 불가 등의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에 한국형 고속철도차량 개발 필요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에 따라 1996년 현대로템을 포함한 70여 산·학·연이 참여한 대형 국책과제 ‘최고시속 350km급 한국형 고속차량 HSR-350X(G7)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2008년 첫 국산 양산형 고속차량인 KTX-산천을 출고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철도차량을 국산화하면서 철도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2019년에는 KTX-이음을 통해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 기술까지 보유한 국가가 됐다. 2022년에는 성능을 높인 KTX-청룡을 성공적으로 출고했다. 국책과제 결과물로 볼 수 있는 ‘시속 350km 이상 고속철도차량 동력시스템 설계 및 제조기술’은 현재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기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유출 시 국가 안전보장이나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 기술을 의미한다.

현대로템은 우즈벡에 안정적으로 고속철도차량을 납품하고 차별화된 유지보수를 제공해 책임감을 갖고 K-고속철의 높은 기술력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민·관 합동으로 이뤄낸 고속철도차량 국산화 성과가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게 된 것으로 자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최근 국내 KTX-청룡 개통에 이어 해외에서도 국산 고속차량이 현지 사람들의 교통편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업 완수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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