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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나이 일흔에 오빠들하고 축구…인생이 너무 즐거워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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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는 애자보다도 못 뛰냐?”

6월 5일 서울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열린 송파구70대축구단과 송파강동구70·80대혼합팀 친선 경기. 스탠드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송파구70대축구단 회원들이 필드에서 뛰는 한 회원이 답답한 플레이를 하자 이렇게 야유를 보냈다. 송파구70대축구단 ‘홍일점’ 정애자 씨(70) 보다도 못 뛴다는 비난 섞인 말이다. 실제로 왼쪽 수비수로 나선 정 씨는 강철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미드필드로 패스도 잘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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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70대축구단의 ‘홍일점’ 정애자 씨(왼쪽)가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상대 공격수를 막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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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2012년 서울 송파구 풍납초교 운동장을 달리다 축구장 밖으로 나온 공을 안으로 차주면서 축구를 접했다. 지금은 생활축구 송파구70대축구단의 유일한 여자 선수로 녹색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제가 풍납동에 오래 살아서 아는 오빠들이 많았죠. 학창시절부터 활동적이라 마라톤대회도 나가고 운동 많이 했어요. 새벽 운동할 때 동네 오빠들이 공을 차 달라고 하기에 자주 차 줬는데 어느 날 ‘그냥 우리랑 함께 공 차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첫날 오빠들이랑 패스를 주고 받았는데 너무 재밌는 겁니다. 그때부터 축구에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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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70대축구단의 ‘홍일점’ 정애자 씨가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다. 2012년 축구를 시작한 그는 매일 새벽 개인 훈련을 하고 주중 2회 경기를 하며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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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풍납조기축구회에 나갔다. 6개월도 안 돼 날아오는 공을 잡고 착지하다 넘어져 왼쪽 팔목이 골절됐다. 그래도 깁스를 하고 축구를 했다. 그는 “공을 발로 가지고 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공을 내가 콘트롤하고 다시 패스하는게 너무 재밌었다. 오빠들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수비하면서 볼을 뺏을 땐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정 씨의 포지션은 수비수. 좌우 사이드백을 다 볼 수 있다. 최근엔 주로 왼쪽 수비를 보고 있다.

“동네 오빠들이 송파구70대축구단이 있으니 가서 차라는 겁니다. 솔직히 솔깃했지만 망설였어요. 동네 오빠들은 안면이 있었지만 다 모르는 분들이라…. 너무 낯설었어요. 진짜 창피함을 무릅쓰고 용기 내서 왔어요. 물론 오빠 몇 분도 함께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지금은 다들 친동생처럼 대해줍니다.”

정 씨는 5년여 전쯤부터 송파70대축구단에서 공을 차고 있다. 나이는 올해로 70대가 됐지만 오빠들이 이해해줘 일찍부터 함께 차고 있다. 생활축구는 연령대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80대가 넘으면 80대축구단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정 씨는 단 하루도 빠지고 않고 악착같이 차고 있다고 했다. 송파구70대축구단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팀을 초청하거나, 원정 가서 경기를 한다. 정 씨는 매일 새벽 개인 훈련을 하고, 축구단 경기도 뛰고 있다. 풍납초교에서 하던 조기축구는 해산돼 휴일이나 일요일 한강공원 천호대교 근처에서 모여서 공을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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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70대축구단의 ‘홍일점’ 정애자 씨(가운데 줄 3명 중 가운데)가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회원들과 포즈를 취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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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가 축구를 늦게 시작했고, 여자다 보니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밀리죠. 그래서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새벽엔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합니다. 가장 어려운 게 볼 리프팅이에요. 양발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해야 하는데 아직 잘 안 돼요. 리프팅을 잘해야 볼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데….”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오후엔 헬스클럽에 간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근육 운동으로 힘을 키우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팔굽혀펴기 100개도 한다. 이렇다 보니 체력에선 오빠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25분씩 진행되는 경기를 4경기 넘게 소화할 수 있다.

축구선수 출신 정환종 송파구70대축구단 감독(73)은 “솔직히 웬만한 남자 선수보다 낫다. 정말 열심히 뛴다. 기술은 아직 달리지만 체력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각종 생활체육 대회에 출전 시키고 싶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선수등록이 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대한축구협회 생활축구 규정에 따르면 성이 다르면 선수등록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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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자 씨가 집에서 덤벨로 근육 운동을 하고 있다. 정애자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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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팀워크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조심스러워요. 제가 공격수를 막지 못해 뚫려 골을 먹으면 굉장히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악착같이 따라붙어요. 반대로 볼을 뺏어 미드필드로 패스하고, 제 수비로 인해 우리팀이 골을 터뜨릴 땐 하늘을 날아 갈 듯 기뻐요.”

현 축구 선수 중에는 손흥민(토트넘)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손흥민은 긍정적이고 인간성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씨가 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란 책을 읽고 있어요.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축구의 가장 기본인 패스와 볼콘트롤 등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둑학원을 하는 제 아들에게도 이 책을 읽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여성축구팀엔 왜 가지 않을까. 정 씨는 “아들하고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제가 나이가 많다고 안 받아준다. 60대 초반이면 몰라도”라고 했다. 최근 여성축구단이 많이 생기지만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여성축구단에 가입도 못하고, 남자 대회에 출전은 할 수 없지만 남자선수들과 어깨를 겨루며 뛰고 있어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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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70대축구단의 ‘홍일점’ 정애자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서울 송파여성축구장에서 친선경기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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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의 하루는 운동과 봉사활동이 대부분이다.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무작정 달려가 자원봉사를 했고, 이후 대한적십자사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은 적십자 희망풍차 프로그램에 참여해 열악하게 살고 있는 세대에게 빵과 생활필수품 등을 전달하고 있다.

집안에선 반대가 없었을까?

“아이들을 다 키운 뒤 15년 전쯤 남편에게 얘기했어요. 어느 순간 제 인생이 허무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이젠 내 인생 살테니 내게 집에 빨리 들어와서 밥해 달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죠. 저도 할 만큼 했으니 내 인생을 살겠다고 ‘자유’를 달라고 했어요. 남편도 인정해줬고 그때부터 남편도 제가 하는 일은 적극 도와주고 있어요. 아들 딸도 ‘축구 선수’로 건강하게 사는 엄마를 적극 응원해주고 있어요. 빨리 결혼을 해야 하는데….”

“축구를 하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삶에 활력이 넘쳐졌죠. 몸이 건강해져 피곤함을 못 느껴요. 축구를 많이하면 잠도 잘와요. 어느 순간부턴 특별한 사정으로 축구를 못하게 되면 온몸이 아파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허리, 다리 등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는데 전 말짱해요. 축구가 절 건강하게 만들었죠. 이젠 정말 축구 없인 못 살아요. 축구는 제 인생입니다. 인생이 너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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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자 씨(오른쪽)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일 때 서울 올림픽공원 정문 앞에서 마스크를 나눠주는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정애자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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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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