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 안 풀밭 철제 울타리 안에 서 있는 소로리 유적 쌍둥이 표지석. 오윤주 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청주에 있다.
지난 14일 오후 소로리 볍씨 유적지를 찾았다. 금강의 지류인 미호강을 따라 형성된 오창과학산업단지 주도로인 508호선 지방도로를 청주 시내로부터 30여분 달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 볍씨 마을’에 닿았다. ‘소로리 볍씨’는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앞두고 1996~2001년 진행한 충북대·단국대 연구단 합동 발굴 과정에서 찾아낸 고대벼 18톨, 유사벼 109톨이다. 당시 서울대와 미국 지오크론 연구실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볍씨가 1만3천~1만5천년 전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봤다. 고고학 교과서로 불리는 ‘현대 고고학의 이해’(콜린 렌프류, 폴 반 공저)는 이 추정을 근거로, 2004년판부터 ‘쌀의 기원은 한국’이라고 명시했다.
마을 어귀 ‘청주 소로리 볍씨 출토지 북동쪽 약 700m’ 안내 조형물을 만났다. 논밭을 지나 농로를 한참 걸었다. 도착한 곳에는 반도체업체 ㅁ사가 있었다. ㅁ사 정문으로 들어서니 너른 풀밭 한가운데 철제 사각 울타리 안 ‘청원 소로리 유적지’라고 쓴 표지석 두개가 쓸쓸하게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유적지를 기념한다고 하기엔 보잘것없다. 발견 직후 학계 등의 문화재 지정 요구가 잇따르자 뒤늦게 청주시는 표지석이 서 있는 주변 6611㎡를 소로리 유적지로, 문화재청은 ㅁ사 주변 891㎡를 소로리 보존 유적으로 각각 지정·관리하고 있다.
세계 최고 볍씨로 알려진 ‘소로리 볍씨’ 상징물. 오윤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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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 안 풀밭 철제 울타리 안에 서 있는 소로리 유적 표지석. 오윤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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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이마저 모두 사라질 뻔했다. 볍씨가 발견된 오창산단은 청주시 오창읍·옥산면 등 945만㎡에 조성됐다. 전기전자업체 85곳 등 160곳이 입주한 국가산업단지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이 ‘볍씨’는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윤희봉 청주시 문화재관리팀장은 “당시 소로리 볍씨의 성격 등에 관한 논란이 있었고, 오창산단 개발이 진행돼 소로리 볍씨 유적지 등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다. 일부 핵심 볍씨 출토지에 공장이 들어서기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근 가동되기 시작한 세계 최고 볍씨 마을 부활 프로젝트는 잊힌 소로리 볍씨의 영광을 되살릴 수 있을까. 먼저 청주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마을의 상징성을 살려 ‘소로리 볍씨 농장’ 4천여㎡를 조성하고, 마을 텃밭 1200여㎡를 일궈 귀농·귀촌인 등을 초대할 계획이다. 볍씨 마을이 포함된 청주시 옥산면 소로지구(25만6885㎡)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농촌공간정비사업 대상에 뽑히면서다. 기반시설도 조성한다. 2028년까지 100억원(국비 50억원, 도·시비 50억원)을 들여 마을 안 축사 4곳을 철거하고 마을회관·다목적광장·공동주차장 등을 만들 예정이다. 곽영문 옥산면 소로2리 이장은 “오창산단 등 도시화 영향으로 지금 소로1~3리 다 더해도 180가구, 인구 400명 남짓 작은 마을로 쪼그라들었다. 5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며 “축사 정비와 소로리 볍씨 농장 조성 등을 통해 세계 최고 볍씨 마을 명성을 되찾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주시는 소로리에 ‘청주박물관’(가칭)을 세워 선사문화 중심으로 키울 계획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청주시는 지난달 한국선사문화연구원·중원문화유산연구원·충북문화재연구원 등 7곳과 청주박물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이들 연구원은 선사 유적 자료, 출토 유물 제공 등을 약속했으며, 청주시는 2028년까지 박물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우종윤 충북문화재협의회장은 “소로리 볍씨는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생명의 상징”이라며 “세계 최고 볍씨 마을이 역사·문화 마을로 부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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